제1야당 자유한국당이 환골탈태를 위한 '집도의(執刀醫)'로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를 비상대책위원장으로 공식 선출했다. 한국당은 시대정신과 동떨어진 안보·경제관,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정책 수준에다 중앙정치에서 사사건건 여권 '발목잡기'에 매몰돼 있다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던 터다.

그러다보니 6·13 재보선과 민선 7기 지방자치 선거에서 '궤멸(潰滅)' 수준의 참패를 당했다. 수모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의석수 112석의 원내 제2당인 한국당이 6석의 정의당과 정당지지율이 엇비슷해질 정도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6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정의당 지지율은 지난주 대비 1.2%p 오른 11.6%를 나타냈다. 반면 한국당은 1.3%p 하락한 17.0%를 기록해 양당 격차는 5.4%p로 좁혀졌다.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 계파 갈등 등 최근 자유한국당이 보여 주는 행태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시련을 극복, 보수정치 본산을 재건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한국당은 이번에 김병준 비대위원장을 '영입'했다고 하겠다. 경북 고령 출신인 김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과 대통령 정책특별 보좌관을 지냈다. 보수텃밭 TK(대구·경북) 출신에 참여정부 핵심인사였다는 강점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이면엔 탄핵국면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한 인사라는 점 때문에 친박(친박근혜) 색채를 띤다는 평가도 있다. 김성태 당 대표 권한대행이 투철한 현실 인식과 치열한 자기혁신인 만큼 김 위원장이 혁신 비대위를 이끌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밝혔지만 '친박' 인식이 없지 않은 것이다.

김 위원장도 이를 의식한 듯 수락 연설에서 한국정치를 계파논리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게 하는 소망, 대신 미래를 위한 가치논쟁과 정책논쟁이 정치의 중심을 이루도록 하는 꿈을 갖고 있다고 계파 청산·개혁 당위성을 강조하고 나서 눈길을 모으고 있다. 김 위원장의 의지 못잖게 놓여진 과제가 만만치 않다.

당장 당의 노선을 전면 수정하고 차기 총선 공천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전권형 비대위가 돼야 한다, 조기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관리형 비대위가 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비대위를 어떻게 구성할지부터가 미지수다. 더욱이 기본조직부터 추슬러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잇따른 선거 패배로 당 지지율은 곤두박질쳤고, 당의 풀뿌리 조직마저 무너진 게 여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경쟁과 책임 등 보수의 기본 가치가 패권주의와 오만으로 망가지고 질려버린 보수층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 개혁적 건전 보수가 새롭게 재건되지 않으면 더 이상 설 땅이 없어지게 된다. 사실 지금처럼 진보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상황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한국 정치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선 '깨끗하고 따뜻한 보수'가 살아나야 한다.

누구보다 한국당 의원과 당협위원장 등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이 이미 평화와 정의, 공존과 평등을 지향하는 상황임을 직시, 고정불변의 도그마적인 자기이념에 갇혀 수구 냉전적 사고를 하는 건 보수의 자살이자 자해임을 인식하고 김 위원장에게 힘을 보태주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리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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