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경영의 자율성을 부여하는 규제 혁파가 화급하다. 문재인 정부는 앞에선 신산업을 육성하고,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하겠다고 말하지만 뒤로는 유야무야이거나 오히려 규제가 더 늘고 있다. 실체적 진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이유다. 그 근저에는 공직자들이 ‘단맛’을 보는 행정재량권이 자리하고 있다. ‘대한민국 규제공화국'의 오랜 오명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국회는 정치현안과 당리당략으로 관련 입법을 계류시키기 일쑤이다. 이런 실정이기에 우리 기업인들은 세계 흐름과 역행하는 규제로 인해 절망감을 토로하고 있다. 과도한 규제는 기업 투자, 일자리 창출, 기업 경쟁력 등을 뒤처지게 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하고 있다.

그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규제가 풀리지 않으니 네이버와 카카오가 서울 대신 도쿄에 투자를 하게 됐다. 네이버는 20일 일본 모바일 메신저 자회사 라인에 7천517억원을 투자한다. 일본 라인은 모(母)회사의 투자금에 일반 투자자 자금까지 1조5천억원을 확보해 간편 결제 서비스인 라인 페이와 보험·대출·증권과 같은 핀테크(fintech·금융기술) 사업에 집중 투자한다.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이 신규 사업의 핵심 거점으로 서울이 아닌 도쿄를 선택한 것은 충격적이다.

카카오도 올 초 블록체인(분산 저장 기술) 개발 자회사 '그라운드X'를 일본에 설립했다. 설립 후 4개월간 직원 약 100명도 채용했다. 이처럼 규제에 발목이 잡힌 기업들이 해외에서 대규모 신사업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국내에서 규제가 풀리기만 기다리다 사업 기회를 놓쳐버릴 수 있다는 다급함이 배경에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새로운 융합기술과 신산업의 변화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규제는 반드시 혁파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현실은 아니다. 문 대통령이 혁신 성장을 위한 1호 규제 개혁 과제로 꼽은 은산(銀産)분리 완화 법안조차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상태다. 중국도 알리바바·텐센트 등 IT(정보기술) 기업들이 금융 혁신을 주도하며 단숨에 미국을 넘어서는 핀테크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신기술 분야에서 국내 규제에 막힌 기업들이 한국을 등지고 해외로 떠나고 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통계청 발표는 올 1월 33만여 명이던 취업자 증가폭이 2월에 10만 명으로 줄더니 8월엔 3천 명으로 급전직하했다. 실업자 수도 올 들어 8개월 연속 일백만 명을 넘어 외환위기 직후 수준으로 악화됐다. 이제라도 규제 혁파를 통해 기업 투자와 4차 산업 경쟁력 확보, 고용 창출의 발판으로 삼길 촉구한다. 자율권은 기업 성장의 근간임을 직시하자.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