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된 '삼바 내부문건' 분식회계 동기 명확해져 이재용 경영권 승계위한 '합병 실체' 드러난 것
경영권 승계작업 없었다던 '면죄부 판결'도 명분잃어...大法, 2심으로 파기환송해야

▲ 김경율 참여연대 집행위원장(회계사). 사진=김현수 기자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삼성은 불법행위가 폭로되면 그때마다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공언(公言)했지만 모두 공언(空言)에 그쳤다. 스스로 잘못을 시정하겠다는 삼성의 말을 믿지 않는다. 오직 올곧은 법의 판단과 엄정한 집행만이 삼성을 바른길로 이끌 것이다."

김경율 참여연대 집행위원장(회계사)은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 고의 분식회계 논란과 관련해 일간투데이와 만난 자리에서 이번 사태의 향후 전망에 대해 이렇게 단호하게 말했다. 삼성에게는 말뿐인 헛된 약속이 아닌 신뢰성 있는 행동으로 실천할 것을 주문했고 그런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사법·금융 관계 당국의 엄정한 법 집행을 촉구했다.

당초 이 인터뷰는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하지만 지난 7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소속 박용진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 강북을)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정황을 드러내는 내부 문건을 공개하면서 관련 사항에 대한 전화 문답 내용을 추가 반영했다.

김 위원장은 "이번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은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옛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추진했다는 것을 증빙하는 결정적인 증거"라며 "'삼성바이오가 지난 2015년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회계처리 기준을 기존 자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한 것은 옛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는 무관하다'는 삼성측의 기존 설명이 잘못됐다는 것을 내부적으로 자인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삼성바이오의 고의 분식 회계가 명확해진 만큼 증권선물위원회는 조속한 판단을 내려야 하고 금융·사법당국도 관련 사항에 대해 신속한 조사와 수사를 해야 할 것"이라며 "대선 후보 시절 '이재용 방지법'을 만들겠다며 강력한 재벌 개혁 의지를 담은 공약을 내놓은 것과 달리 최근 재벌개혁 행보가 후퇴하고 있는 문재인 정부도 다시 한 번 개혁의 고삐를 당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이번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사건을 간단히 정리한다면.

"지난 2014년 부친인 이건희 회장 와병으로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 그룹 경영권 승계 작업의 속도를 낼 필요가 있었다. 특히 주력 기업인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 이 회사에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삼성물산과 그 영향력 아래 놓인 삼성생명에 대한 접근권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이 부회장은 지난 2015년 자신이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제일모직(옛 에버랜드)와 옛 삼성물산의 합병을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을 높이고자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의 회사 가치를 부풀려야 했고 그 방법으로 삼성바이오의 자회사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해 막대한 평가차익을 반영했다. 합작사인 미국 바이오젠이 콜옵션(주식을 미리 정한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지배력이 상실됐다는 이유다. 비슷한 시기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표준지 공시지가는 이상 급등 현상을 보이며 역시 제일모직의 회사가치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 이 부회장측은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에 연루돼 수사와 재판을 받는 내내 '경영권 승계는 특검이나 언론에서 만든 가상의 틀이고 이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는 입장인데.

"지난 2일 '한겨레신문'의 보도와 지난 7일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의 폭로로 공개된 내부 문건을 보면 삼성이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두고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옛 미래전략실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대응했음을 알 수 있다. 삼성은 내부 문건이 나오면 언제나 '별 것 아니다'라는 식으로 얼버무렸지만 이번 내부 문건은 삼성바이오 분식 회계의 문제점에 대해 삼성 스스로도 명확히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삼성은 분식회계가 옛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미칠 영향까지 상세히 분석해 예상된 시나리오를 검토했다. 이보다 더 결정적인 증거는 없다."

- 삼성바이오측은 합작사인 바이오젠이 2015년 바이오에피스의 절반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는 콜옵션을 행사하겠다고 통보해오면서 '지배력 변경'이 예상돼 회계처리 방식을 변경했다고 주장한다.

"이번에 공개된 내부 문건을 보면 삼성바이오가 바이오에피스에 대한 '지배력 변경' 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콜옵션 부채로 인한 자본 잠식을 은폐하기 위해 기존 자회사에서 관계회사로의 전환을 통한 분식회계를 모의한 정황이 드러난다. 이는 삼성바이오가 그동안 펼친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번 내부 문건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분식회계의 동기가 명확하게 드러났다는 점이다. 통합 삼성물산의 분기보고서에서 옛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시 바이오 사업가치 평가와 관련해 삼성바이오를 6.9조원(바이오에피스는 5.3조원, 파생부채 1.8조원)으로 평가함에 따라 회계법인은 삼성바이오의 2015년 결산에서도 바이오젠사의 콜옵션에 대해 부채 및 손실 반영을 요구했다.

그런데 콜옵션 부채를 반영할 경우 삼성바이오가 자기자본 잠식 상태에 빠질 것이 확실시됨에 따라 대안을 찾고자 했다. 이와 관련해 ▲바이오젠과의 계약서 소급 수정(제1안) ▲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제2안) ▲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로 유지하되 그 기업가치 평가액 축소(제3안) 등 3가지 방안이 검토됐다. 이는 계약서를 임의로 소급해 변경하거나 지배력 판단을 임의로 변경하거나 바이오에피스 평가액을 회사에 의도에 맞게 수정하는 등의 불법·탈법적인 방법이었다. 삼성바이오는 결국 제2안(지배력 판단을 임의로 변경해 바이오에피스를 종속회사에서 관계회사로 변경하는 안)을 선택해 자본잠식 상태를 양(+)의 자본 상태로 전환시켰다.

 

김경율 참여연대 집행위원장(회계사). 사진=김현수 기자


- 회계 원칙상 이 점이 특히 어떤 점에서 문제인가.

"많은 분식회계의 동기는 장부상의 중요한 숫자를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하기 위함이다. 즉 손익측면에서 적자(-)를 흑자(+)로 반전시키거나 재무측면에서 자기자본을 잠식(-)상태에서 양(+)의 자본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감리결과 조치양정기준에서도 분식회계(위법행위)를 구분할 때 당기손익이나 자기자본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를 가장 무겁게 처벌하고 있으며 '위법행위로 인해 당기손실이 당기이익으로 혹은 그 반대의 결과가 발생하거나 위법행위를 정정하면 완전 자본잠식 상태가 되는 경우'를 기본조치에서 가중할 수 있는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이번 문건에서 완전 자본잠식 상태를 피하기 위한 명확한 동기를 확인할 수 있으며 이는 고의 분식의 결정적인 증거이다.

또한 삼성바이오 내부 문건을 통해 알 수 있는 중요한 점은 삼성바이오가 '바이오에피스의 실질가치 변동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는 점과 '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변경하는 주요 전제가 충족되지 않았음'에도 삼성바이오가 지배력 판단 변경을 강행했다는 점이다. 삼성바이오 문건에 따르면 관계회사로 분류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콜옵션 행사를 예상할 수 있는 바이오에피스의 상장신청 등 중요 이벤트가 필요하다'며 '대규모 이익 발생에 대한 대외 설명은 바이오에피스 상장진행 관련 회계처리이며 회사의 실질가치는 변동 없는 것으로 설명 예정'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바이오에피스의 상장을 전제로 검토했던 관계회사 변경 회계처리를 실제로 바이오에피스가 미국 나스닥 상장을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강행한 점은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가 고의 분식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바이오에피스의 실질가치는 변동 없다'는 점이 수차례 기재돼 있는 점은 삼성바이오가 그동안 해왔던 바이오에피스 가치 증가 등의 해명이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었음을 자인하는 증거다."

- 증선위는 금감원 1차 감리에 대해 지난 7월 삼성바이오가 바이오젠에 대한 콜옵션을 공시 누락한 점은 고의성을 인정하고 검찰 고발을 의결했다. 하지만 '2012~2014년에 삼성바이오가 바이오에피스를 관계회사로 처리하는 게 맞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금감원은 재감리에서 이를 반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증선위 의견대로 삼성바이오가 바이오에피스를 처음부터 자회사가 아닌 관계회사로 처리하도록 하면 삼성에게 많은 부담이 될 것이다. 삼성은 위 기간 동안의 오류를 정정해 회계 장부를 재작성하고 재공시해야 한다. 또한 처음부터 관계회사이면 공정가액으로 기록돼야 하기 때문에 삼성바이오가 바이오에피스를 기존 자회사에서 관계회사로 회계 처리 기준을 변경하면서 발생한 4조 8천억원대 평가차익도 사라지게 된다. 그러면 급상승한 삼성바이오 평가차익에 근거해 산정된 제일모직 합병비율도 재조정돼야 한다. 옛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정당성이 뿌리부터 흔들리는 것이다. 아울러 삼성바이오에 지분을 갖고 있는 삼성물산, 삼성전자 등도 그만큼 회계 재조정을 해야 한다."

- 향후 관계 당국에 바라는 점은.

"삼성바이오의 분식회계를 입증하는 결정적인 내부문건 증거가 나온 만큼 자본시장의 투명성과 투자자 보호를 위해 증선위는 더 이상 판단을 지체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회 역시 삼정·안진 등 회계법인이 작성한 삼성바이오 및 에피스 기업가치 평가가 담긴 모든 자료를 즉각 확보해 공개해야 한다. 또한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를 위해 불공정하게 진행된 옛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전후 과정에서 자행된 불·편법 행위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금감원과 검찰은 신속하고 적극적인 감리 및 수사를 진행해야 할 것이다.

- 일각에서는 삼성바이오 상장적격성 심사에 이은 '상장폐지설'도 나와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크다.

"상장폐지까지 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미 다수의 시장참여자가 있는 기업이기에 시장에 줄 충격을 감안해 상장폐지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자본시장법상에도 여러 가지 시장 상황을 고려한 예외 사유가 있다. 과거 대우조선해양도 분식회계 금액만 따졌을 때 더 큰 규모였지만 상장폐지가 안됐다. 삼성이 상폐로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자극해 자신들의 잘못을 호도하는 일이 있으면 안 될 것이다."

- 지난 1일 서울중앙지검에 '옛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추가 증거가 확보됐다'며 이 부회장 등 삼성 관계자들을 추가 고발했다. 또한 국토교통부가 '에버랜드 표준지 공시지가의 이상 급등락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며 검찰에 수사 의뢰했는데 관련 수사가 지지부진한 점도 질타하며 관련자들도 고발했다.

"현재 검찰이 사법농단 비리에 수사력을 기울이면서 에버랜드 관련 수사에 집중하지 못해 진척이 늦은 상태다. 검찰은 국가 과세행정과 부동산 정책의 근간인 공시지가 산정이 일개 기업 총수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조작됐다는 의혹에 대해 명명백백히 실체를 밝혀내 관련자들의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일개 기업의 문제로 끝날 일 아니고 국가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이다."

- 향후 이재용 부회장 3심 결과에 미칠 영향은.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는 '경영권 승계작업은 없었다'며 면죄부 판결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번 내부 문건 공개로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두고 옛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이 조직적으로 움직여서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 합병에 영향을 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2심으로 파기환송해야 한다. 대법원에서 적절한 판결을 내릴 것으로 기대한다.

-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더불어 사는 경제'를 주창하며 구체적으로 '공정경제'를 강조했었는데 경제난이 심화되면서 최근 재벌개혁 의지가 약화됐다는 비판이 많다. 지난 7월에는 문 대통령이 인도 방문시 삼성 스마트폰 공장 준공식에 참석해 이재용 부회장과 회동을 갖고 지난 9월 방북시에도 이 부회장이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재판이 계류중 신분임에도 동행했다. 일각에서는 재판에 끼칠 영향을 우려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유력 대선후보자 시절이던 지난해 1월 10일 '재벌개혁 없이 경제민주화도 경제성장도 없다'며 여러 가지 재벌개혁 조치를 제시한 가운데 당시에도 큰 문제가 됐던 옛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같은 사태 재발을 막기 위해 가칭 '이재용 방지법'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집권한 이래로 아직까지 재벌개혁과 관련해 실질적으로 이뤄진 게 거의 없다."

- 일각에서는 경제가 어려운데 '경제인 기 살리기'를 해서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8월에는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삼성 평택 반도체 공장을 찾아 이 부회장에게 대규모 투자를 요청했고 삼성은 이에 화답해 180조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을 발표했다.

"이 부회장뿐만 아니라 역시 최순실 국정 농단에 연루된 신동빈 롯데 회장도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 나오자마자 대규모 투자계획을 내놓았다. 특정기업 총수가 불법행위에 대한 처벌이 아니라 면죄부를 받는 대가로 정부 정책에 부응해 대규모 투자·고용계획을 발표하는 모습은 이전 정부에서 익히 봐 오던 모습이다. 더도 말고 이 부회장의 부친인 이건희 회장 때도 그랬지 않았는가.

그런데 문제는 이윤을 따지는 기업에서 총수를 감옥에서 빼내오기 위해 내놓은 투자안이 얼마나 실현가능성이 있겠는가하는 점이다. 과거 참여연대가 이건희 회장 때 내놓은 투자·고용 계획의 실제 집행률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상당 부분 애초 발표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이번 삼성의 대규모 투자·고용 계획도 국민 경제에 실질적으로 미칠 효과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기업은 이윤의 가능성이 있으면 정부가 말리더라도 투자를 한다. 정부가 재벌 대기업의 투자에 목매달면서 불법을 방조·묵인하는 행태는 이제는 청산해야 한다."

- 삼성의 향후 변화 가능성은.

"삼성은 지난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에 의해 불법 비자금을 조성했던 일이 폭로되자 차명계좌에 예치된 금액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그 뒤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사회 환원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되레 그 뒤 차명계좌에 예치된 금액을 이건희 회장 계좌로 옮기면서 수천억원대 세금을 탈루했다는 의혹을 받지 않았는가. 삼성은 불법행위가 폭로되면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심리인지 그때만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공언(公言)하지만 제대로 이뤄진 게 없고 모두 공언(空言)에 그쳤다. 스스로 잘못을 시정하겠다는 삼성의 말을 믿지 않는다. 오직 올곧은 법의 판단과 엄정한 집행만이 삼성을 바른길로 이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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