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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칼럼]살생부 작성법

  • 배상익 선임기자
  • 승인 2019.06.12  13:09:21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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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훈 박사(서경대학교 나노융합공학과 학과장)
IMF 사태가 막 지난 1999년,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할 때였다. 다른 굴지의 반도체 회사와 통합된 회사에서 전격적인 인원 재배치가 이루어졌다.

스물아홉 사회경험도 일천한 어린 과장에게 팀원 중 2명을 내보낼 명단을 작성하는 일은 감당 못할 부담이었다. 며칠 동안 과음도 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막내과장을 보다 못한 최고참 김 과장님이 조용히 부르셨다. (후에 상무까지 역임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야, 너 명단에 이름 올릴 사람 못 찍겠지" 네! "내가 가르쳐주는 대로 하겠다면 방법을 가르쳐주지" 정말요? "그 대신 내가 말한 그대로 해야 돼" 네!

어차피 달리 뾰족한 방법도 없으니 가르쳐 주시는 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너, 네 팀에 '그 놈이 아니면 안 된다' 떠오르는 놈 있지? 그 놈부터 짤라"(말이 거칠지만 아직도 뇌리에 박혀 있어 10년 아래 사회 초년병 과장에게 선배 과장이 해주는 이야기 그대로 옮겼다.)

누군가 월차를 내서 출근을 하지 않았거나, 몇 시간 자리를 비웠는데 담당 공정이 진행되는데 사소한 문제라도 발생한다면 그 사람이 조직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눈에 띄지 않게 그 사람이 정보공유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든 새로 구해서 쓸 수 있지만, 조직의 발목을 잡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조직 전체의 직무 수행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간단히 설명해 주셨다.

그 후로 회사를 나와서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동안 '그 놈이 아니면 안 된다는 놈이 생기면 모든 부담을 감수하고 잘라버린다'가 내 마음 속 팀 운영 모토가 되었다.

물론 단 한 번도 그런 사람이 생긴 적은 없다. 팀이 조직될 때부터 최고참 과장님의 조언을 완곡하게 표현해서 모든 팀원이 충분히 이해하도록 했다.

가정과 학교에서, 혹은 사회에서 우리는 ‘대체될 수 없는, 소중한, 그리고 특별한’ 사람이 되라고 교육된다. 그래야 사회생활을 할 때 남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다고 가르친다.

심지어 대학교의 팀프로젝트에서 다른 팀원을 평가하도록 강요받기도 한다. 팀 내에서도 가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받는 것이다.

그런데 인기가 높은 1인 유튜버라 할지라도 수입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팀 단위로 운영된다. 어떤 사회생활이든 독불장군으로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어떤 조직이든 그 조직에 가장 도움이 되는 사람은 가장 빨리 새로운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이다. 잠시 자리를 비워도, 혹은 연차를 다 끌어 모아 2주 휴가를 떠나도 소속 팀이 수행하는 업무에 차질이 없게 기여하는 사람이다. 이런 착한 공유자에게는 일이 몰린다.

관리자는 일을 몰아주는 사람들을 모두 팀에서 제거해야 한다. 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다 털어 공유하고 나면 뭐가 남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그릇을 비워야 채워지는 것이지, 자신만이 아는 팁을 다른 사람들에게 감추어 우위를 유지할 때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격주 4일 근무한다는 대기업의 선언이 반갑다. 결국 많이 쉬고 많이 놀아도, 서로 엇갈려 쉬고 엇갈려 놀아도 돌아가는 살아서 꿈틀대는 조직이 생길 기반을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개개인의 능력치는 최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대부분의 일류기업이 세계적 초일류 기업에 살짝 못 미치는 일류기업에 머무르는 이유가 있다. 지금 당신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두 기업, 바로 그 두 기업 이야기다.

우리나라 일류기업이 가진 가장 큰 문제를 그 안에서 일하는 엔지니어들은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그 미묘한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자신이 가진 최고의 아이디어는 절대로 내놓지 않기 때문 이다. 내놓을 생각도 없다. 몸담고 있는 조직 구성원의 면면을 겪어서 알고 있기에. 이런 사실을 최고위 관리자 분들은 모른다.

자신은 최고의 연봉에 어울리는 최고의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으니까. 부하직원들 아이디어도 물론 자기 업적의 일부다.

그렇다면 세계적 초일류 기업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이 가진 최고의 아이디어를 내놓으면 그것을 가로채는 중간관리자도 없고 그 아이디어가 도출해 내는 결과에 대한 소유와 주변의 존중을 보장한다는 것' 이다.

'그걸 보장하기 위해 사내 벤처, 린 스타트업을 권장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이런 경우 창업을 할 만한 아이템으로 시작하고 정말 좋은 아이템은 그 창업기업이 안정되면 직접 할 생각으로 내놓지 않는다.

하여간 제일 좋은 아이디어는 내놓지 않는다 - 개발직, 어떤 경우에도 가장 좋은 아이템은 노출시키지 않는다 - 기획직, 술 취해도 가장 좋은 인맥은 입 밖에도 내지 않는다 - 정치인, 뭐 이런 흐름이랄까.

지금 이 글을 읽는 분조차 '아니, 제일 좋은 것을 내놓으면 무슨 밑천으로 살아간단 말인가' 생각하실 수도 있다. 그게 우리나라 특별화 교육의 한계다.

가장 좋은 것을 서로 내놓을 수 있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것을 서로 인정해주는 신뢰를 만드는 훈련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 기반 위에 새로운 것을 도출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마는 세상을 만난 것이다.

예전보다는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자신의 최선을 다해 만들어낸 팀원의 결과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관리자들은 어느 기업, 어느 연구소, 어느 대학에나 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아이디어를 팀원들이 내놓게 될까?

관리자가 팀원에게, 교수가 학생에게 ‘내가 가진 기득권은 없다. 어떤 경우에도 당신의 공헌을 가로채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매일 팀원들 앞에서 말하게 해야 한다.

관리자가 말하지 않은 부분은 암묵적으로 부여되는 경계 없는 권한으로 자리 잡는다. 권한을 내려놓는 것은 권한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내게 있는 권한을 여러분의 것을 가로채는 데 쓰지 않겠다'고 말하는 데서 시작된다.

한편 특별해야 다른 사람을 앞선다는 교육을 받은 사람이 정치를 하면 비록 가짜뉴스라 하더라도 색다르고 자극적인 내용으로 좀 더 각색해서 남다른 무언가를 보이고 싶어 한다.

노이즈 마케팅이어도 좋다. 대중의 이목만 끌 수 있다면 총선이 열 이제 10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바로 공천이 가까이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운대로 수단이나 방법을 묻지 않고 심지어 같은 당이어도 정보를 공유하거나 깊은 의논도 하지 않고 언론에 흘리고, 국민을 자극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어떻게 그런 말을 매일 하면서 권위가 서겠는가 걱정하시는 권한 가진 분들은 억지로 그렇게 매일 말하게 되기 전에 이제 좀 내려 놔야 할 때가 됐다.

배상익 선임기자 news101@hanmail.net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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