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대의 민주주의'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모든 정치 협상이 사실상 중단됐고 각 정파의 지도부는 제 역할을 외면하는 등 의사결정 시스템 자체가 붕괴됐다고 할 수 있다. 참으로 개탄스런 정치 현실이자 국민 분노를 부르는 정치인들의 '배임 행위'이다.

선거제·검찰개혁 법안의 패스트 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둘러싼 여야4당 대(對) 자유한국당의 대치로 국회가 '개점휴업' 상태다. 그나마 여야 교섭단체 3당 원내대표가 24일 국회 정상화에 극적 합의했지만 한국당 의원총회에서 2시간여 후 추인을 받지 못했다. 80일 만에 이뤄질 것으로 예상됐던 국회 정상화는 또다시 미뤄지게 됐다. 3당은 합의문에서 "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조정법 등 패스트 트랙 법안은 각 당의 안을 종합해 논의한 후 합의 정신에 따라 처리한다"고 밝혔다. 이 조항에 대해 강성 한국당 의원들은 "구속력이 떨어진다"며 강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국회 정상화가 절실한 상황에서 한국당의 '선택'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국당은 국회 일정을 거부할 때가 아니고, 등원 후 '투쟁'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국가 안보가 위중한 국면이다. 일본 오사카(大板)에서 28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개최, 문재인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등을 만난다. G20 정상회의가 끝나는 29일 오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숨 가쁘다. 여하튼 강대국들의 대 한반도정책을 놓고 민감한 쟁점에 대한 조율 수준이 초미관심이다. 북한의 비핵화는 공통된 의제다. 이를 토대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해제, 한반도 평화 및 동북아 안정의 방향 설정이 예상되는 시점이다.

경제는 또 어떠한가. 밖으로는 세계 주요 2개국(G2)인 미국과 중국 간 무역분쟁이 부른 수요 감소 등으로 경제의 버팀목 격인 반도체·디스플레이·석유화학 업종 등에서 수출 감소세가 뚜렷하다. 안으로는 강경 투쟁에 나선 노조와 규제에 막혀 자동차·조선·철강 등 주력산업이 도약의 기회조차 잡지 못하고 날릴 판이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하향 전망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 5월 기존 2.6%에서 2.4%로 하향조정했고, 노무라는 1.8% 성장하는데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더 비관적 전망이다. KDI는 전망치를 2.6%에서 2.4%로 하향 조정한 바 있다.

재난 수준의 미세먼지를 줄이고 민생 경제를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6조 7000억원 규모로 편성한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의 국회통과도 시급하다. '추경은 타이밍이 생명'이라는 말처럼 제때 추경이 집행되지 않을 경우 그 효과를 상당 부분 상실할 수 있다는 게 우려를 사고 있다. 여야 간 쟁점이 있는 건 당연지사이지만, 생산적 토론과 타협을 통해 이러한 사안들을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수렴하고 녹여 국익을 도모해야 한다.

한국당은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이 이미 평화와 정의, 공존과 평등을 지향하는 상황임을 직시, 고정불변의 도그마적인 자기이념에 갇혀 수구 냉전적 사고를 하는 건 보수의 자살이자 자해라는 사실을 깨닫길 바란다. '회심'을 통한 국회의 본령 회복에 나서길 기대한다. 제1야당 한국당이 국민에게 수권야당의 신뢰를 심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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