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 "양국 소재·부품 밀접한 관계"
소니·애플 타격…세계적인 부품 대란 되나

▲ 일본 정부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 대법원의 배상 판결에 대한 보복 조치로 반도체 제조 등에 필요한 핵심 소재 등의 수출 규제 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소재·부품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있는 한일 양국 기업에 타격이 우려된다. 사진은 지난 2일 오후 텔레비전 매장이 모여 있는 용산전자상가. 사진=연합뉴스
[일간투데이 임현지 기자] 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심사를 본격 강화한 가운데 일본 내에서도 자국 기업에 미칠 여파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본 도쿄신문은 4일 '한일 기업이 함께 망할 우려가 있다'는 기사를 통해 "일본과 한국은 부품과 제품을 서로 공급하는 밀접한 경제 관계를 맺고 있다"며 "이번 사태가 장기화하면 일본 기업에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1차로 규제를 가하기 시작한 품목은 유기EL 디스플레이 패널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소재인 포토 리지스트(감광제)와 에칭 가스(고순도불화수소·세정제)다.

한국 기업들은 플루오드 폴리이미드는 전체의 93.7%, 리지스트는 93.7%를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에칭 가스는 일본산(43.9%)과 중국산(46.3%)의 비중이 비슷하다.

도쿄신문은 이들 품목은 일본 업체의 세계 시장 점유율이 높은 만큼 한국의 수요 업체들이 단기간에 다른 공급처를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한국 주력 산업인 반도체 업계가 원료를 제대로 조달 받지 못해 생산에 차질을 보게 되면 일본 기업도 악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실제로 수출 규제 강화의 대상 품목인 리지스트를 제조하는 '도쿄오우카(東京應化)' 관계자는 "리지스트 전체에서 한국은 상당히 큰 비율을 점하고 있는데 규제가 확대되면 영향이 클 것"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에칭가스를 제조해 한국에 수출하는 '스텔라케미화'도 지난 1일 기자회견을 통해 "일본 정부의 조치로 수출 절차가 복잡해져 선적이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기자회견 당일 주가가 전주 종가에 비해 2.3% 하락했다.

아사히신문 역시 이번 수출 규제로 한국 반도체 업체와 거래하고 있는 일본 기업이 부품 공급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일본 최대 전자제품 제조사인 '소니'는 TV 생산이 중단돼 판매점에 내놓을 제품이 고갈될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소니는 한국 기업들로부터 TV용 유기EL 패널을 공급받고 있다. 이번 보복 조치로 한국 제조사가 소재 조달에 어려움을 겪어 유기EL 패널 생산에 차질이 생기면 이를 제때 납품받을 수 없게 된다.

소니 관계자는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어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TV 생산을 못해 상품이 고갈될 가능성을 포함해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각국 기업들이 서로 소재와 부품에 상부상조하고 있는 만큼 일본의 이번 조치는 세계적인 부품 대란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예측된다.

미국 애플의 '아이폰' 일부 제품에는 삼성전자의 유기EL 패널이 탑재된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로 아이폰 생산이 늦어지면 애플에 다른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일본 기업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아사히신문은 '보복을 즉시 철회하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고 "이번 규제는 자유무역의 원칙을 왜곡하는 조치"라고 강조했고, 도쿄신문은 같은 날 "일본의 조치는 일본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대화의 실마리를 찾아 조기 수습을 꾀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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