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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미옥의 목요시선] 님의 침묵(沈默)

  • 강혜희 기자
  • 승인 2019.09.14  20:50:39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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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한용운

   
▲ 한용운 시인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야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참어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야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쓰'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러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골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출처 : '한용운 시전집', 서정시학(2014).

▲"인간은 무명(無明)과 삶에 대한 욕망 때문에 병에 걸리는 것이며, 나도 또한 그렇습니다. 만일 일체중생의 병이 없어진다면 내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보살은 중생을 위하여 생사에 들어가는 것이요, 생사가 있으면 병이 있습니다. 만일 중생이 병을 여의면 보살도 병이 없을 것입니다."('유마경')

'거리의 도인(道人)'이라 불리었으며 대승불교의 이상형이었던 유마힐은 석가의 청을 받들어 병문안을 온 문수보살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는 중생과 자신을 하나로 여겨 대자비심을 일으키는 보살행(菩薩行)을 보여주는 것으로, 재가(在家) 불자였던 유마거사가 출가(出家) 비구인 문수보살에게 병을 방편으로 승속(僧俗)을 초월한 불이(不二)의 법문을 열어 보인 것이다.

"보살이 불이법문(不二法門)을 깨닫는 것은 어떤 경지인가?"

이에 대해 32보살들은 저마다 생(生)과 멸(滅), 나(我)와 나의 소유물(我所), 생사와 열반, 세간과 출세간, 지혜와 무명(無明), 선(善)과 불선(不善), 어둠과 밝음, 결박과 해탈, 정도(正道)와 사도(邪道), 진실과 허위, 물질적 현상(色)과 그 현상이 공한 것(色空) 등을 서로 다르다고 여겨 나누어 가르고 맞서게 하는 것을 초월하는 것이 그러한 경지에 드는 것이라고 자신의 견해를 제시하였다.

이에 문수보살은 그것을 설명하고 아는 체하는 질문과 대답마저 떠나는 것이 불이(不二)의 법문에 들어가는 길이라고 설하고 유마힐의 견해를 물었다. 그러자 유마거사는 '묵연무언(默然無言)'으로 그것을 실천해 보여 문수보살을 감탄케 함으로써 그곳에 모인 5천명의 보살이 모두 불이법문에 들어 무생법인(無生法忍)-존재하는 모든 것은 태어난 바가 없다는 깨달음의 확신-을 얻게 하였다고 한다.

시종 역설과 함께 '사랑'과 '이별'의 대립의 구조로 이루어진 '님의 침묵'은 유마힐의 '불이법문'을 통해서 보았을 때 비로소 온전히 이해된다. 그것은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의 윤회사상으로도 읽을 수 있지만, 불이사상의 넓은 눈으로 바라보았을 때라야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깨달음(사랑)을 실천한 시인의 시와 삶을 이해하고 그 뜻을 본받을 수 있게 된다. 이 시에는 일생을 승려로서 불교의 개혁과 현실참여를 주장하고, 국권상실의 암울한 시기에 독립운동을 펼치며 옥고를 치루면서도 저항을 멈추지 않았던 만해 시인의 대승적 정신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 정신이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라고 노래할 수 있게 한다. 또한 그러한 정신에서 나온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가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도"는 것으로 차별과 억압이 있는 이 세상을 존중과 자유가 넘치는 세계로 변모시킨다.

'불이법문(不二法門)'에서 '불이(不二)'는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법어 중에 하나로서 "둘이 아니며" 따라서 "다르지 않다"라는 뜻이다. 부처와 중생이 다르지 않고, 깨달음과 무명이 다르지 않고 성(聖)과 속(俗)이 다르지 않고,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세계관이다. 하지만 '불이(不二)'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줄임말로써 "둘이 아니다"라고 할 때에는 "하나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불이'는 일률적이고 획일적인 평등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과 개성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다양성과 자유의 평등사상이라고 하면 지나친 비약일까.

개인과 사회는 끊임없이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오늘에 이어지고 있다. 어제의 만남이 내일의 이별로 이어지고, 내일의 이별이 다시 모레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때에 따라 변화하는 감정과 사상에도 변함없는 것은 '사랑' 그 자체일 뿐이다. 어떻게 하면 더 진실한 '사랑의 노래'로 사랑 그 자체인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돌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매순간 기억하여 실천해야 할 영원한 과제이리라.

■한용운(韓龍雲, 호: 만해(萬海, 卍海))

△1879년 충남 홍성 출생, 1944년 영면
△6세부터 10년 동안 향리 서당에서 한학(漢學) 수학
-1896년 설악산 오세암에 입산 출가,
-1905년 설악산 백담사에서 득도(得度)
-1910년 '조선불교유신론'
-1914년 '불교대전'과 '채근담 주해본' 저술
-1918년 월간 '유심' 창간,
-1919년 3·1운동 때 불교계 대표로 참여
-1920년 만세사건 주동자로 지목되어 3년 동안 옥살이
-1920년 '님의 침묵' 발간,
-1927년 '신간회' 결성 및 중앙집행위원 및 경성지회장 겸직
-1930년 '불교' 잡지 인수 및 사장 취임
-1935년 '조선일보'에 장편소설 '흑풍'
-1936년 '조선중앙일보'에 '후회'
-1938년 '조선일보'에 '박명' 연재
-1962년 대한민국장 추서.
△시집 : '님의 침묵'

강혜희 기자 khh922@naver.com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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