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18일 0시부터 일본의 반도체 핵심소재 수출규제 조치에 대응해 두 번째 검을 빼들었다. 지난 11일 일본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데 이어 일본을 백색 국가(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시켰다. 일본의 지난 7월 1일 첫 규제 조치 이후 2개월 18일 만이다

정부는 일본을 기존 백색 국가인 '가' 지역에서 원칙적으로 비(非) 백색 국가와 같은 규제를 받는 '가의2'로 사실상 강등하면서 "국제수출통제체제의 국제공조가 어려운 국가에 대해 수출관리를 강화하려는 조치"라고 말했다.

일본의 선제공격에 대한 맞대응 조치로 보인다. 그러면서 일본을 국제공조가 어려운 국가로 규정하고, WTO 규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도 강조했다. 한국은 수출입에 대한 국제공조가 가능한지를 토대로 고시 개정을 한 것이고 일본은 정치적 목적에서 규제 조치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목적과 취지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이번 전략물자 수출입 고시 개정은 정상적인 국내법, 국제법 절차에 따라 제도를 개선한 것이어서 WTO 제소 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지난 2018년 기준으로 한일 간 소재 산업에서 한국의 대일적자는 223억달러 규모로 집계됐다. 우리가 소재 분야에 대일 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다. 의존도가 높은 소재 분야를 단숨에 국산화로 하기에는 다소 시간이 필요한 부분이라 정부가 단기와 장기지원에 450억달러(45조3000억원 규모)를 투입해서 극복하겠다는 양동 전략도 내놨다.

구체적으로 보면 100대 품목의 공급 안정성을 조기에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20대 품목은 1년 내, 80대 품목은 5년 내 국산화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개발에 7조8000억원, 관련 분야 인수합병(M&A)에 2조5000억원, 금융지원은 35조원 규모다.

문제는 그간 정부가 소재 산업 육성을 위해 투입된 지원이 이번 일본과의 분쟁에서 효과를 보지 못 한 체 또다시 국산화만이 살길이라는 인식에 그쳤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번엔 더 적극적인 지원책을 내놓고 국회까지 나섰다. 나서는 것은 좋지만 지원책이 산업현장에서 성과로 이어지는지를 살피는 것은 정부 몫이다.

일본은 100년 넘게 축적한 기술을 무기로 한국 기업을 겁박하는 상황에서 ‘하면 된다’라는 구호만으로는 뭔가 찜찜하다. 일본은 한국의 대응을 보고 추가 보복조치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소재 분야의 대일 무역적자를 상쇄하고도 남을 2배나 많은 장단기 지원과 육성책이 소재산업에 효과적으로 접목해 성과를 내려면 이들 기업이 부딪히는 규제도 풀어야 할 부분이다. 또 국산화가 전부는 아니다. 국산화의 전략이 소재 분야도 국제표준으로 이어져야만 수출로 먹고사는 기업도 살고 국제 경쟁력도 확보할 수 있다.

일본 다음으로 중국도 우리와 치열한 기술경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기업들이 소재 산업 국산화를 넘어 국제표준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이들의 요구사항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왕 정부와 국회가 나선 이상 가용 지원책을 적기에 투입해야 한다. 마중물을 넘어 이들 기업이 국내 기업 간 협업할 수 있는 산학연 체제에도 세심한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게 업계가 바라는 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메모리반도체 생산에서 세계 1, 2위 기업으로 우뚝 섰지만, 그 이면을 뒷받침하는 소재·장비 분야는 일본이 독식해 한국 반도체산업의 치명적인 허점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우리에겐 삼성전자가 일본의 반도체 제조기술을 도입해서 반도체 강국으로 거듭났고, 현대중공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기술혁신으로 따라잡은 전례가 있다. 우리에겐 ‘할 수 있다’라는 희망이 있는 만큼 소재 분야도 희망은 있다.

현대중공업이 미쓰비시중공업을 앞서가자고 작업 현장에 투입 직전 당시 민계식 회장이 선창하면 모든 임직원이 결의했던 구호가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가 세계 최고!”. 그 구호가 현실이 된 현대중공업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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