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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하얀 양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백양사(白羊寺)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0.07  11:32:45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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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이름을 살펴보면 그 절의 창건, 중창 설화를 가늠케 한다. 바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자 고불총림(古佛叢林) 백양사(白羊寺) 이야기다. 하얀 양(白羊)이 스님의 금강경 독경 소리를 듣고 깨달았다는 백양사(白羊寺)가 그렇다.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백양로 백암산(白巖山) 백양사는 백제 시대 고찰로 율원, 강원과 3개 선원(천진암, 고불 및 운문 선원)을 갖춘 고불총림이다. 특히 운문암 운문 선원은 북한의 마하연과 함께 한국불교의 양대 선원으로 손꼽힐 정도로 뛰어난 수행처다. 태고사, 월명암과 함께 한국불교 3대 수행처로 스님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백양사(白羊寺)는 632년 백제 무왕 33년에 고승 여환 선사가 범궁(梵宮)인 백암사(白巖寺)를 새로 세운 이후 1034년 덕종 3년에 중연 선사가 정토 신앙을 펼치기 위해 정토사(淨土寺)로 개칭됐다. 이후 현재의 백양사로 불리게 된 것은 1574년 조선 선조 7년 환양(幻羊) 스님이 주석하면서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을 듣고 하얀 양(白羊)이 크게 깨달음을 얻어 환생했다는 데서 유래한다.

'백양사 사적기'와 소요 대사(1562~1649년) 비명 등에 따르면 조선 선조 7년인 1574년에 경내 약사암 영천굴(靈泉窟)에서 독경 소리를 듣고 있던 흰 양이 깨달음을 얻어 사람으로 환생한 환양팔원(喚羊八元)을 계기로 백양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 선조 때 환양 선사가 백양사 경내 백학봉 아래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수많은 양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되는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저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축생의 몸을 받았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업장을 소멸하여 다시 천국으로 환생해 가게 되었다"라며 절을 하였다고 한다. 이튿날 아침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고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고쳐 불렀다고 한다.

석가모니부처님을 뜻하는 고불총림(古佛叢林)답게 백양사는 부처님의 수행 후 이적을 나타내는 수많은 현상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선 중기 석가모니 부처님이 환생했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도력을 갖춘 진묵(震默, 1562~1633년) 대사가 현재 운문 선원 불사 과정에서 차(茶) 끓이는 소임인 다각을 맡았을 때 하루는 신장단에 차를 올렸는데 스님들 꿈에 신장이 나타나서 "우리는 호법신장으로서 불보살을 보호해야 하는데 도리어 예를 받게 되니 황송한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그러니 차 소임을 바꾸어 달라"고 부탁하였다고 한다. 이후 스님들은 진묵스님이 법력이 높은 스님임을 알게 되어 부처님처럼 예우하며 불사의 증명 법사로 모시고 산중의 조실로 추앙했다. 불사가 회향 되면서 진묵 대사는 대중에게 "내가 다시 와서 불사하기 전에는 부처님 전에 손을 대지 말라"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난 1950년 6.25전쟁 때 운문암이 불에 타면서 당시 스님이 운문암의 불상을 밖의 바위에 모시자 잠시 후 불상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그 불상은 볼 수 없지만 진묵 대사가 다시 오면 볼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지난 2015년에는 진묵 대사가 일곱 살에 동진 출가한 전라북도 완주군 봉서사에 안치된 진묵 대사 부도 중앙 부분이 수십 년째 점점 커지고 있다는 믿기 어려운 이적을 보인다고 한다.

백양사 스님들에 따르면 이곳 운문암 선원에서 겨울철 눈이 쌓여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릴 마땅한 찬이 없는 차에 공양주 보살의 꿈에 수염이 허연 노인이 나타나 산어귀를 가리키며 “그곳에 가서 스님들께 삼을 캐 공양을 올리라” 해서 다음날 가보니 산삼밭이 있어 스님들께 공양을 올렸다는 공양주 보살의 실화담도 있다.

또 있다. 지난 1980년 광주의 아픔을 고등학생 신분으로 처참하게 보고 갓 출가한 사미승이 칠성전 전각 기도 소임을 볼 때 오른팔에 북두칠성을 상징하는 북두 구진이 붉은 반점으로 10여 일 동안 나타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의 초발심을 간직한 체 여전히 기도 정진 중이다.

백양사가 대한불교조계종 33관음 기도 도량으로 알려진 것은 약사암(藥師庵)과 영천굴(靈泉窟) 기도 가피 덕분이다. 영천굴은 66㎡ 남짓한 천연 석굴인데 백양사 뒤 백학봉 정상부근의 약사암 내에 있다. 영천굴에는 영험하다는 영천샘이 있다. 천일기도를 포함한 5년간 기도를 한 뒤 첫 소임으로 약사암과 영천굴 암주 소임을 맡은 스님이 2018년 6월 어느 날 사시 예불을 드리는데, 하늘에서 때 아닌 오색무지개가 법당에 기도중인 스님과 신도들에게 오랫동안 머물렀다고 한다. '여기가 바로 고불총림 이다'를 상징하는 영험담이 백양사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최종걸 주필 jgchoi62@dtoday.co.kr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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