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ad37

[사설] 서초동과 광화문 열기 한국 미래 에너지원화 해야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0.08  16:38:42
  • 19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구글+
네이버 밴드
네이버 블로그
네이버 폴라
핀터레스트
URL 복사
default_news_ad2
ad42
지난 1900년을 전후로 전 세계는 대변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우리 대한민국도 당시 600여 년의 조선 왕국이 흥망성쇠 끝에 일본에 무참히 짓밟힌 시기였다. 비단 우리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청나라를 포함한 유럽 등 수백 년 왕조 국가들이 해체되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 혹은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 온갖 이념과 사상 들이 동시에 일어났던 시기였다. 예술 분야도 입체파, 야수파가 유럽을 무대로 등장하는 등 전환시대 새로운 사조와 사상이 전 세계에서 백가쟁명처럼 일었다. 산업혁명과 함께했다. 고전적인 질서와 문화 및 문명도 옛 것으로 밀려 휩쓸려갔다.

그로부터 불과 100년이 흐른 지금 세계는 우리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상상 속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 산업혁명을 뛰어넘었던 정보화 혁명에 이어 4차산업혁명에 전 세계는 지금 국가와 기업의 명운을 걸고 뛰어들고 있다. 선두 다툼이 선점을 하는 세상에서 너나 할 것 없이 선두 다툼 중이다.

새로운 기류는 기존의 모든 것을 리셋하고 이전에 보지 못했던 것들을 등장시킨다. 지난 1980년대 전후까지 소위 관용과 포용이 제국이라고 여겼던 미국과 유럽은 요즘 온데간데없다. 각자 살길을 찾기 위해 미덕의 시대를 접고 있는 듯하다. 미국은 중국에 이어 유럽에도 관세라는 칼을 꺼내 들었다. 미국이 먼저라고 한다. 미국이 먼저일 수 없다. 서로 필요한 부분을 보완해서 잘살아 보자는 다자 무역 주의 자유무역(FTA)을 먼저 외쳤으면서도 고율의 관세라는 칼을 빼 드는 것은 대국의 길을 포기하는 지름길이다. 각국의 국내총생산(GDP)이 국가별로 차이 나는 것을 상호 보완하는 수출입 교역을 통해 늘리자는 협정을 맺고 있으면서도 상대방에게 무한 양보만 강요하는 것은 옳지 못한 처사이다.

지난 2007년 미국의 정보통신기술(ICT)의 기린아 스티브 잡스는 휴대전화로 쌍방향 정보교류와 동영상 등을 공유할 수 있는 ‘아이폰’이라는 스마트폰을 내놨다.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이런 시대라는 것을 체감할 수 있는 ‘아이폰’이었다. 캐나다 블랙베리, 한국 삼성의 애니콜, 스웨덴의 노키아 등 제조회사들이 발칵 뒤집혔다. 전혀 다른 개념의 기기였기 때문이다. 이때 유일하게 삼성전자는 애니콜을 버리고 이듬해인 2008년 갤럭시(은하)라는 스마트폰을 아이폰 못지않게 내놨다. 그로부터 10여 년간 아이폰과 갤럭시는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앱이라는 콘텐츠를 스마트폰에서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있다. 모르던 길도 우주 공간에서 돌고 있는 위성을 통해 찾게 하고, 가장 민감한 상대국의 비밀기지도 확인할 수 있는 4차산업혁명의 필수품 개발에 엎치락뒤치락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세상이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시대로 진입했다는 신호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카카오톡, 위챗 등 각국은 저마다 서로가 소통하고 교류할 수 있는 모든 장을 개방시켰다. 개방은 문이 없다는 이야기다.

언제, 어디서든지 원하면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시대이다. 미국 백악관을 출입하는 기자들은 이제 더 백악관 내 기자실에서 배포하는 보도자료에 의존하지 않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 계정에 가입해서 트럼프 대통령이 시도 때도 없이 올리는 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주요 국정 현안 또는 개인의 생각을 페이스북을 통해 전하고 있다. 공개하고 공유하는 시대에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이 같은 정보 전달 매개체를 통해 세계는 초연결 시대로 이미 진입했다.


이를 두고 한병철 독일 베를린예술대학 교수는 그의 저서 ‘투명사회’에서 “상대방을 신뢰할 수 없어서 투명을 요구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정치, 문학, 의료 등 모든 영역이 투명을 요구 받는 이 시대는 투명성이 곧 이데올로기가 됐다. 그러나 투명해짐으로써 신뢰를 회복할 수는 없다. 투명이 신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신뢰가 없어서 투명을 요구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한 교수는 “만약 우리가 모든 걸 볼 수 있는 사회에 산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천국일지 지옥일지 되짚어봐야 한다”라면서 “스마트폰이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디지털 파놉티콘(감시체계)’ 구축에 봉사하는 도구로 비친다.”라고 분석했다.

서초동 대검찰청 주변과 광화문 일대에서 대한민국 미래를 열어가겠다고 선명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들에게 각자가 주장하는 바가 서로서로 감시하는 스마트폰이 아닌 서로에게 사다리가 되고 디딤돌이 되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4차산업혁명을 주도하려는 선도국답게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그 힘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미래 시대를 이끌 명약으로 삼아야 할 때다.

최종걸 주필 jgchoi62@dtoday.co.kr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ad43


default_news_ad5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커넥티드잇템

1 2 3
item88

4차산업

ad40

빅데이터VIEW

포토뉴스

1 2 3
item84

오피니언

사회·전국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