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이병주 교수 연구팀, 영화 등장 여성 인물 편향성 정량 분석
컴퓨터 비전 기술 통해 다양한 요소 기준 남·녀 성별 묘사 편향성 밝혀

▲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문화기술대학원 이병주 교수 연구팀이 컴퓨터 비전 기술을 통해 상업 영화에서 남성과 여성 성별간 캐릭터 묘사의 편향성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고 14일 밝혔다. 컴퓨터 비전 기술을 활용한 성별간 캐릭터 묘사 편향석 분석 방법 개념도. 자료=KAIST
[일간투데이 이욱신 기자] 여성 인물에 대한 성별 묘사의 편향성을 판정하는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를 통과했는지 여부와 상관 없이 대부분의 영화가 여성을 편향적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밝힌 정량적인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문화기술대학원 이병주 교수 연구팀이 컴퓨터 비전 기술을 통해 상업 영화에서 남성과 여성 성별간 캐릭터 묘사의 편향성을 정량적으로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고 14일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소셜 컴퓨팅 분야 최고 권위 학회인 '컴퓨터 기반 협업 및 소셜 컴퓨팅 학회(CSCW·Computer-Supported Cooperative Work and Social Computing)' 11월 11일 자로 발표될 예정이다.(논문명 : Quantification of Gender Representation Bias in Commercial Films based on Image Analysis)

일반적으로 영화에서는 여성 캐릭터의 성별 묘사 편향성을 미국의 여성 만화가 앨리슨 벡델(Alison Bechdel)이 고안한 벡델 테스트(Bechdel Test)를 통해 평가하고 있다. 이 테스트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영화에 이름을 가진 여성 캐릭터가 두 명 이상 등장하며 ▲그 여성들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여성 캐릭터들의 대화 주제가 남성 캐릭터와 관련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벡델 테스트는 여성 캐릭터의 대사만으로 판별하기 때문에 캐릭터의 시각적인 묘사를 고려할 수 없으며 여성 캐릭터 혼자 극을 이끄는 영화들에 적용이 어렵다. 또 여성 캐릭터만을 평가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성 캐릭터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는지를 알 수 없으며 테스트에 통과하거나 하지 못하는 이분법적 잣대만을 제공하기 때문에 성별 묘사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충분히 대변하기 어렵다. 그리고 평가자가 영화를 보고 주관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오류 발생 가능성이 있다.

이병주 교수 연구팀은 영화의 시간적, 시각적 특성을 반영해 성별 묘사 편향성을 측정하기 위해 이미지 분석 시스템을 도입했다. 효과적 분석을 위해 24프레임(fps) 영화를 3프레임으로 다운 샘플링한 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의 얼굴 감지 기술(Face API)로 영화 캐릭터의 젠더, 감정, 나이, 크기, 위치 등을 확인했다. 그리고 사물 감지 기술(YOLO 9000)로 영화 캐릭터와 함께 등장한 사물의 종류와 위치를 확인했다.

연구팀은 2017년과 2018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와 우리나라 영화 40편을 대상으로 이미지 분석 시스템을 통해 여덟 가지 새로운 지표들을 제시하고 분석해 상업 영화 내에서의 성별 묘사의 편향성을 밝혀냈다.

이 중 '감정적 다양성(Emotional Diversity)' 지표에 따르면 여성 캐릭터는 남성 캐릭터에 비해 더 획일화된 감정표현을 보였다. 특히 여성 캐릭터는 슬픔, 공포, 놀람 등의 수동적인 감정을 더 표현하는 반면 남성 캐릭터는 분노, 싫음 등의 능동적인 감정을 더 표현했다.

'주변 물체의 빈도와 종류(Type and Frequency of Surrounding Objects)' 지표에 따르면 여성 캐릭터가 자동차와 함께 나오는 비율은 남성 캐릭터 대비 55.7%밖에 되지 않았던 반면 가구와 함께 나오는 비율은 123.9%를 보였다.

여성 캐릭터의 '시간적 점유도(Temporal Occupancy)'는 남성 캐릭터 대비 56% 정도로 낮았으며 '평균 연령(Mean Age)'은 79.1% 정도로 어리게 나왔다. 특히 앞서 언급한 두 지표는 우리나라 영화에서 두드러지게 관찰됐다.

이병주 교수는 "우리나라에선 1인당 연간 평균 영화관람 횟수가 4.25회에 이를 정도로 많은 사람이 영화를 즐겨보는데 이는 영화라는 매체가 우리나라 대중들의 잠재의식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뜻한다"며 "따라서 영화 내 묘사가 관객들의 생각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보다 활발하게 진행돼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더욱 신중하게 영화가 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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