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 경제 상황과 전망을 17일(현지시각) 미국 뉴욕 세인트레지스 호텔에서 해외 주요 투자자를 상대로 직접 설명했다.

2년 9개월 만이라는 점에서 다소 아쉽지만 적절한 때에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미치는 투자자들을 찾아 나선 것은 평가받을 만하다. 우리나라는 대외 변수에 영향을 받는 만큼 가능한 한 여러 통로로 해외투자자들과 소통을 통해 우군화할 필요가 있다.

홍 부총리가 소개한 국내 경제 상황을 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40% 이하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보다 낮은 수준이고, 외화보유액도 4030억달러(9월 19일 기준)로 넉넉한 편이다. 또 한국은 제조업이 반도체, 자동차, 철강, 화학 등으로 분산돼 매우 균형 잡힌 산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어 글로벌 불확실성에 따른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상황으로 소개했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이 평가한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은 무디스(Aa2)와 S&P(AA), 피치(AA-)로 지난 1997년 이후 단 한 차례도 강등된 적이 없고, 현재 한국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32bp(11일 기준)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이다. CDS는 채권을 발행한 국가·기업이 부도났을 때 손실을 보상하는 파생상품으로, 낮을수록 국가 부도 위험이 적다. 이처럼 국제기구 순위와 국가신용등급, 부도 위험 지표 등도 안정적이라는 설명을 나열하며 한국 경제의 탄탄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잠재적 위험요인으로 가계 부채와 한일 무역갈등도 숨김없이 이어갔다. 특히 일본의 수출규제를 두고는 "일본의 수출규제가 이어진다면 한국 제조업체와 일본 수출업체가 타격을 받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라고 한일 양국 무역갈등에 부정적인 요인이 있음을 털어놨다.

장기 전략과 과제로 D.N.A(데이터·네트워크·AI)와 빅3(시스템반도체·미래차·바이오·헬스)에 대한 전략적 투자를 통해 혁신성장을 가속하고 규제 샌드박스 확대 노력도 지속, 중장기적으로는 제조업 르네상스와 서비스 산업 육성 추진을 소개하고 4차산업혁명에 대응한 전략적 투자에 나서겠다는 뜻을 투자자들에게 소개한 셈이다.

이날 설명회에는 제임스 퀴글리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부회장, 쇼어드 리나트 JP모건 글로벌 기업금융 총괄, 조너선 그레이 블랙스톤 최고운영책임자(COO), 존 스터진스키 핌코 부회장, 허용학 CD&R 파트너, 마이클 쿠시마 모건스탠리 최고투자책임자(CIO) 등 IB·자산운용사 관계자 약 100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해외투자자들은 홍 부총리의 기조연설 이후 한국 정부의 노동 친화적 정책 기조와 디플레이션 우려, 통화정책, 수출 부진 해소방안, 남북 경제협력 등 한국 경제 상황 전반에 관심을 드러냈다. 특히 노동정책에 대해 최저임금 인상 등 문재인 정부의 노동 친화적 정책이 이어질지에 대한 관심을 나타냈다. 홍 부총리는 "(노동정책) 방향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가운데 비준 못 한 것에 대해 몇 가지 적용하려는 시도가 있고 관련한 여러 논의가 있을 수 있다"라면서도 "기업과 시장의 흡수 능력을 고려한 보완작업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300인 미만 기업에 52시간제 적용을 앞두고 조만간 정부 대책을 내놓을 것이라며, 큰 원칙은 견지하되 기업의 적용 유연성도 확보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패트릭 도일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주식 부문 대표가 한국의 수출 부진 상황을 지적하자, 홍 부총리는 "반도체 가격 급락과 대중 수출 감소가 원인"이라며 "수출 촉진에 총력을 기울이고 수출시장 다변화 등 정책적 지원을 위해 모든 것을 동원하고 있다"라고 답했다.

한일 무역갈등에 대해서는 "G20 후쿠오카 재무장관 회의 및 오사카 정상회의의 비차별 무역 조치를 담은 선언문과 일본의 수출규제가 배치돼 아쉬움이 많다"라며 "일본의 수출규제가 철회돼야 한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서 이 문제를 간접 거론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 경협 진전사항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현재는 경제교류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면서도 "물밑에서 지속해서 검토하고 있고 남북경협이 본격화되면 동북아 경협으로 확대될 수 있는 폭발력 있는 변화 요인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전망했다.

한국 경제 IR에 참석한 딕 리피 에버코어ISI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그는 한국의 국가부채 비율이 40%보다 낮은 것은 국제 기준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라며 한국에 충분한 재정정책 여력이 있다고도 강조했다. 그러나 "인구구조나 노동시장 포용성, 출산율 등의 문제가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더 투자하고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등의 변화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처럼 국내 주식시장과 채권시장 등 자본시장에 다국적 기업들이 상주하는 상황에서 국내 경제 상황을 기탄없이 이들 해외투자자들과 의견을 나누는 일은 당연히 연례적인 행사여야 한다. 신뢰와 소통만이 우리가 어려울 때 그들도 우리 편에 설 수 있다.

지난 1998년 우리가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긴급 수혈을 받을 때 국민의 진정성 어린 금 모으기 운동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처럼 알고 싶어 하는 경제정책과 방향을 소개하고 이들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일이야말로 경제를 담당하는 부총리가 챙겨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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