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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걸의 창건설화] 염라대왕마저 참회를 인정한 고운사(孤雲寺)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0.20  17:50:45
  • 19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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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종교는 자기로부터의 반성, 참회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참회는 처절한 자기 반성에서 비롯돼 '알음알이' 식을 버릴 때에 묘관찰지와 평등성지를 깨달아 돈오(頓悟, 즉각 깨달음)의 경지로 간다고 한다.

바로 그 처절한 몸이 부서지는 고행을 동반한 참회로 우리나라 제일의 지장도량으로 거듭난 절이 있다. 염라대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절이 경상북도 의성군 등운산 고운사(孤雲寺)다. 오죽했으면 저승의 염라대왕이 불러서 가면 "너 고운사 다녀왔냐?"라고 물었겠는가. 염라대왕도 고운사 지장보살에게 조복(調伏)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살아 생전에 고운사 다녀왔으면 평소 참회를 했으니 지옥은 면해주겠다는 면죄부를 준 셈이다.

지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 4인조 의성 낭자들이 시골벽지에서 팀을 꾸려 우리에게도 생소한 컬링이란 종목으로 은메달을 따 전 세계인들에게 ‘스포츠란 이런 것이다’라고 법문을 펼친 그곳이다. 고운사는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구계리 등운산(騰雲山)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이다.

'영~미~~~'로 통하는 4인조 컬링팀은 바로 고운사에서 틈틈이 명상 수련을 통해 우리가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컬링' 이란 동계올림픽 종목을 세계 2위로 단숨에 끌어올렸다. 마치 선정 삼매를 통한 득도의 과정처럼 길고 긴 여운을 남겼다.

등운산(騰雲山) 고운사(孤雲寺)는 해동 화엄종의 시조라는 의상(義湘) 대사가 681년 신라 신문왕 1년에 고운사(高雲寺)로 창건했다. 이후 신라 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이 여지(如智)·여사(如事) 스님과 함께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羽化樓)를 건립하고 이를 기념해 최치원의 자(字)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이름을 개칭했다고 한다.

연꽃이 반쯤 핀 형국인 부용반개형상(芙蓉半開形象)의 천하명당에 위치한 이 사찰은 창건 당시 드높은 구름을 뜻하는 고운사(高雲寺)였다가 자기를 낮추는 선비를 뜻하는 고운(孤雲) 최치원의 자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로 개칭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고운(孤雲) 선생은 신라말 열세 살 때에 당나라로 유학, 불교와 유교ㆍ도교에 모두 통달했다고 한다. 요즘말로 고시에 합격, 관료가 돼 황소(黃巢)의 난 때는 종사관(從事官)으로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써서 난을 평정하는 데에 큰 공을 세울 정도로 뛰어난 문장가로 활약하다 귀국한 당대 석학이었다.

고운사는 이후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자 풍수지리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도선국사가 가람을 크게 일으겼다고 한다. 경내 약사전의 부처님과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은 도선국사가 당시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사적기와 내려오는 설화 등에 따르면 고운사는 해동 제일 지장도량이라 불리는 지장보살 영험 성지로 알려져 있다. 지장보살은 억압받는 자, 죽어가는 자, 나쁜 꿈에 시달리는 자 등의 구원자로서, 지옥행 벌을 받게 된 모든 사자(死者)의 영혼을 구제할 때까지 자신의 기도를 그만두지 않겠다는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전생에 왕족계급인 브라만 집안의 딸로 태어나 석가모니에게 헌신적으로 기도함으로써 자신의 사악한 어머니가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 "땅 속에서 몸을 갈무리한 보살" 이란 의미의 지장보살, 바로 그 보살을 모신 곳이다.

고운사의 명부전은 저승의 유명계(幽冥界)를 사찰 안으로 옮겨 놓은 전각이다. 이 전각 안에 지장보살을 봉안했기 때문에 지장전,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기 때문에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억불 정책을 겪으면서 부모의 천도를 위해 도교의 신인 시왕을 수용하면서 명부전을 통해 지장 신앙과 시왕 신앙이 결합된 형태다. 내부에는 지장보살과 후불탱화가 있고 염라 10왕과 그 권속들이 봉안돼 있다. 바로 그 명부전이 죽어서 저승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냐?"고 물었다는 이야기의 유래처이기도 하다.

특히 극락전 내의 관음상 설화가 이채롭다. 내려오는 설화에 따르면 조선 숙종 시절 당시 고승이었던 천해 선사가 선정을 드는데 관음보살이 나타나 "내가 연이 다한 탓에 이제 스님을 따르리라"라고 말하고 사라졌다고 한다. 얼마 후 스님이 송도 대흥산 어느 암자에 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선정 중에 봤던 관음보살상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그 불상을 고이 모셔와 지금의 극락전에 안치했다고 한다. 고운사 지장보살의 원만자비한 풍모는 물론이거니와 명부십대왕의 상호와 복장도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위엄과 정교함을 간직하고 있다.

최종걸 주필 jgchoi62@dtoday.co.kr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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