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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걸의 창건설화] 나라의 스승을 배출한 국사 도량 송광사(松廣寺)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0.22  14:48:18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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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도 어른이 있고 승가에도 고승이 있듯이 나라에도 임금의 스승이 있었으니 이를 일러 국사(國師)라 했다. 국사는 승속은 물론 나라에도 질서를 바로잡아주는 역할을 했다. 무너져 가는 승가(僧家)를 바로잡기 위해 정혜결사(定慧結社)에 나섰고 이를 계기로 고려 시대 나라의 큰 스승이었던 국사 열여섯 분을 배출한 승보종찰(僧寶宗刹) 송광사가 그렇다.

송광사는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에 있는 조계산 자락에 새 둥지처럼 아늑하게 자리 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1 교구 본사다. 참선 수행을 위한 선원과 경전 교육기관인 강원, 계율 전문 율원을 갖춘 대한불교조계종 총림(叢林) 중 하나인 조계총림이자 16 국사를 배출한 승보종찰이다.

왜 송광사를 승보종찰이라 하는가는 바로 여기에 답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800여년 전 고려 시대 때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년) 스님이 정혜결사를 통해 당시 타락한 고려 불교를 바로잡아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는 근본 도량의 첫 수행처 역할을 한 이후 지눌 스님의 뒤를 이어 열다섯 분의 국사를 포함한 열여섯 분의 국사(十六國師)가 나와 한국 불교의 전통을 면면히 계승해 오늘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송광사 사적기 등에 따르면 속설에는 “앞으로도 두 분의 스님이 국사로 출현할 것이라는 뜻이 송광사라는 절 이름에 암시돼 있다”고도 한다. 송광사의 송광(松廣)은 여러 가지로 풀이된다. 첫째 송(松)자를 파자하면 十八(木)과 公,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편다는 뜻으로 열여덟 분의 스님이 나와 불법을 펴는 절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송광사가 이처럼 승보종찰로 거듭나게 된 데에는 보조 국사 지눌 스님이 정혜결사를 위해 장소를 찾던 중 터를 잡을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깎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고 한다. 이 전설을 토대로 송광의 뜻을 솔개(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풀었다고 한다. 또 일찍부터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 '솔뫼'라 불렀고 그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으며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전에는 송광사를 대길상사(大吉祥寺) 수선사(修禪寺)라고도 불렀다.

송광사의 핵심 상징은 대웅전·승보전·국사전 등이다. 대웅전이 사찰의 중심 상징이라면, 승보전과 국사전은 총림 겸 사찰로서 송광사를 상징하는 전각이다. 정면 3칸의 승보전은 승보 사찰의 상징이다. 정면 4칸의 맞배지붕 형태인 국사전에는 고려 시대의 국사 15명의 스님과 조선 시대에 그 공덕이 국사와 같다고 하여 종문에서 국사 칭호를 붙인 고봉 화상 등 16 국사의 영정이 봉안돼 있다. 특이한 점은 빨치산들이 지른 1951년 화재에도 국사전만은 화재를 피할 수 있었는데 이는 이곳에 봉안된 국사의 법력에 의한 것이라고 스님들은 보고 있다.

송광사에는 신라말 혜린(慧璘) 선사와 관련된 창건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꿈속에 석가여래가 나타나 새로운 전을 세워 중생 구제의 큰일을 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깨어보니 전염병에 걸려있던 제자들의 병이 모두 완치되었다고 한다. 이후 돌부처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간절히 묻는 기도를 하니 어느 늙은 스님이 나타나 불보를 전해주며 송광산에 절을 지어 모시라고 이야기했다는 창건설화도 내려온다. 또 송광사 경내 천자암 뒤편의 향나무는 보조 국사가 사용하던 지팡이가 향나무로 자라고 있다고 한다.

특이한 것이 또 있다. 일주문을 지나면 특이한 전각 두 채가 있다. 일주문을 지나 절 입구에는 영가들을 위한 사우나(?)가 있는데, 그 사우나는 1평도 안 되는 작은 전각 두 채를 일컫는다. 편액을 보면 척주당과 세월각이다. 척주당은 남자 귀신, 세월각은 여자 귀신을 위한 사우나라고 스님들은 귀띔한다. 영혼의 사우나를 불교용어로 관욕소라고 한다.

송광사 스님들에 따르면 육신의 때를 씻는 곳이 사우나이고 영혼의 때를 씻는 장소를 관욕소라 한다. 보통은 법당의 불전 뒤쪽에 병풍을 가리고 시설하는데 송광사에는 별도의 건물을 지어 관욕의식을 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지만 우리나라 사찰에서 송광사에만 남아있는 유일한 전각이다.

49제 지낼 때 제주들은 하루 일찍 와서 법주스님의 지도로 위패를 모시고 관욕의식을 하며 영혼의 때를 벗긴다. 탐욕과 분노의 때 집착과 자만심, 질투의 때를 벗기고 청정과 자비의 가마를 타고 다음 날 경내로 들어간다. 영혼 사우나에서 번뇌의 때를 씻지 못한 영가는 사천왕이 무서워 들어가지 못할까 봐 바로 이곳에서 영가들을 위한 불교적 의식을 이곳에서 치렀다고 한다.

최종걸 주필 jgchoi62@dtoday.co.kr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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