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 일가가 '지주사 체제' 밖에서 170개 계열사를 두고 총수의 전위부대 역할 뿐만 아니라 계열사 간 밀어주고 끌어주는 방식으로 일가 간 이익을 독식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주나 2세와 3세들이 회장인 대기업 집단들의 한국형 재벌그룹 가운데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경우라도 회장 일가가 여전히 170개에 이르는 계열사를 지주회사 체제 밖에서 직접 지배하고 있다.

이들 중 절반 이상은 회장 일가의 사익에 악용될 잠재적 위험에 노출됐다. 지주회사 체제를 갖춰더라도 재벌그룹의 내부거래 비중은 일반 그룹보다 높았다.

이 같은 사실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지난 11일 이런 내용을 포함한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현황 분석'(2019년 9월 말 기준) 결과를 발표하면서 밝혀졌다.

공정위에 따르면 9월 현재 기업집단 전체가 지주회사 체제로 바뀐 대기업 집단(그룹)을 일컫는 '전환집단'은 지난해 22개보다 1개 줄어든 23개 재벌그룹으로 집계됐다. 공정위가 분류하는 ‘전환집단’은 대기업 집단 가운데 지주회사 및 소속 자회사, 손자(자회사의 자회사), 증손회사(손자회사의 자회사)의 자산총액 합이 기업집단 소속 전체 회사 자산총액의 50% 이상인 경우다.

지난 한 해 동안 롯데그룹, 효성그룹, 에이치디씨(HDC) 3개 대기업 집단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고, 지주회사 체제 상태에서 애경이 대기업 집단에 새로 편입됐지만 메리츠금융그룹, 한진중공업, 한솔은 전환집단에서 제외됐다.

'지주회사 체제 그룹' 중 총수가 있는 23개 전환집단 가운데 총수가 있는 전환집단은 21개로 이들 전환집단의 지주회사에 대한 총수 평균 지분율은 27.4%지만 총수 일가(총수 포함)의 평균 지분율은 49.7%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28.2%, 44.8%)과 비교하면 총수 지분율은 떨어졌지만, 총수 일가 지분율은 오히려 다소 높아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새로 전환집단에 포함된 효성그룹과 애경그룹 총수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총수 일가 지분율(53.3%, 45.9%)이 높았기 때문이다.

전환집단은 전체 962개 계열사 중 760개를 지주회사 체제 안에 편입, 지주회사 편입률(지주회사 및 자·손자·증손회사 수/전체 계열사 수)이 79%였지만 그 밖에 총수 일가가 지주회사 체제 밖에서 지배하는 계열사도 21%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주회사 밖에 있는 총수 일가와 관련된 '사익편취 규제' 대상 회사는 81개, 이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회사가 28개였다. 이 중 64%인 109개(81+28개)가 총수 일가의 사익을 위해 악용될 잠재적 위험에 놓여있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공정위는 전환집단 체제 밖 계열사 중 절반 이상이 사익편취 규제 대상이거나 사각지대에 있다는 것은 이들 회사를 이용한 총수 일가의 지배력 확대 뿐 아니라 재벌그룹 중심의 경제력 집중 우려가 도사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주회사 밖 계열사와 지주회사 내 계열사의 부당 내부거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익편취 규제 대상 계열사 81개 가운데 9개의 경우 지주회사 체제 밖에서 지주회사 지분을 갖고 있고, 해당 계열사(9개) 중 6개에서 총수 2세의 지분도 20% 이상 차지하고 있어 경영권 승계를 대비한 우회 통로를 확보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낳고 있다.

전환집단의 내부거래 비중은 평균 15.83%로, 지난해 17.16%보다는 다소 줄었으나 일반집단(대기업 집단 59개 중 전환집단 제외) 평균 9.87%에 비하면 사익추구가 일반집단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재벌그룹들이 지주회사 밖에까지 계열사를 두고 골목상권까지 빼앗으면서까지 총수 일가간 사익추구에 몰두하는 모습은 상도(商道)의 길이 아니다. 마치 대학원생이 유치원에 가서 회장질 하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재벌그룹은 성장과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 재벌로 성장하는 동안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며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공이 있다. 그동안 축적된 경험을 살려 세계 기업들과 경쟁하는 모범을 보이는 게 오히려 더 재벌다운 모습이다.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