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고령화 등에 따른 복지 명목 예산 집행이 급증하면서 정부가 세수 부족분을 메꾸기 위해 적자 국채를 발행하는 소위 마이너스 통장 규모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세수는 줄어드는데 집행은 늘어나서 부족분 만큼 국채를 발행해 예산을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마이너스 통장'이라고 할 수 있는 재정증권 누적 발행액이 49조원으로 사상 최고인 것으로 나타났다. 재정증권은 국고금 출납 과정에서 생기는 일시적인 부족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정부가 발행하는 단기(63일 또는 28일 물) 유가증권으로 반드시 연내 상환해야 한다.

쉽게 말해 일반 국민이 쓰는 '마이너스 통장'과 비슷한 경우로 월급날까지 기다릴 수 없어 마이너스 통장에서 마이너스 지출 규모를 늘리는 행태다. 당장 현금이 없으니 본인 신용한도 내에서 마이너스 대출을 늘려 급한 불을 끄는 식이다.

정부가 이 같은 마이너스 통장 격인 재정증권을 발행한 규모를 보면 지난 2월 6조원을 시작으로 3월 10조원, 4월 7조원, 5월 6조원, 6월 10조원, 7월 3조원, 8월 4조원, 9월 3조원 등 2∼9월에 매달 재정증권으로 단기 자금을 조달해 예산 조기 집행에 투입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재정증권 발행을 통해 2∼6월에는 주로 재정 조기 집행에 필요한 자금을 융통했지만, 7∼9월 발행액 전액은 기존에 발행한 재정증권 상환에 사용했다.

올해 연간 누적 발행 액수는 49조원으로 지난해 2조원에 불과했던 누적 재정증권 발행 액수가 올해 단숨에 25배 가까이 증가한 것은 정부의 예산 조기 집행 기조와 세수 부진이 꼽히고 있다.

정부가 미·중 무역분쟁에 따른 수출 부진으로 세수가 급감한 가운데 경기 하방 압력이 높아지자 올해 연초부터 재정의 조기 집행에 나섰기 때문이다. 정부 재정이 마중물 역할을 해서라도 경기 하방을 막겠다고 먼저 돈을 풀었다는 뜻이다.

올해 상반기까지 세금 수입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조원 줄었고, 예산 기준 세수 진도율도 53.0%로 0.5%포인트 하락했지만, 재정집행은 65.4%로 상반기 목표치 61.0%를 초과했다.

예정된 월급 이전에 급한 불을 꺼야 하는 상황에서 없는 돈을 마이너스 통장에서 빼서 '급전'을 쓴 셈이다.

이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내년에도 513조원이 넘는 슈퍼 예산에다 추가경정예산까지 가세할 경우 재정증권 발행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월급은 줄어드는데 쓸 곳은 늘어나 마이너스 통장이 갈수록 늘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늘어나는 정부의 지출 규모이다. 내년 국고보조금 규모가 3년 새 26조원이나 늘어난 86조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에 대가 없이 재원을 지급하는 국고보조금이 수년째 50조~60조원 선에서 유지되다 최근 3년 새 26조원 규모로 늘면서 86조원 규모로 증가했다. 증가 추세가 가파르다.

국고보조금 중 의무지출의 경우 법령에 따라 지급하는 상황이라 한번 늘어나면 줄일 수가 없는 데 행정부가 재량에 따라 지출하는 재량지출 규모보다 배 이상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7일 기획재정부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바른미래당 김성식 의원에게 제출한 '2014∼2020년 국고보조금 추이' 자료에 따르면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기준 내년 국고보조금은 총 86조1358억원에 이를 것으로 집계됐다.

국고보조금은 국가가 지방자치단체와 민간이 수행하는 특정한 목적의 사업을 장려하기 위해 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원해주는 제도로, 국민 생활과 밀접한 정책(사업)들이 국고보조 사업 형태로 집행된다. 기초연금·아동수당 지급, 의료·생계 급여, 영·유아 보육료 지원, 일자리 안정자금 지원, 주거 급여 지원, 가정양육수당 지원, 장애인 연금, 노인 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취업 성공 패키지 지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연도별 국고보조금 규모를 보면 2014년 52조5391억원, 2015년 58조4240억원, 2016년 60조3429억원, 2017년 59조6221억원, 2018년 66조9412억원, 2019년 77조8979억원으로 증가 추세가 이어져 왔다.

국고보조금 중에서도 의무지출 규모가 재량지출에 비해 2배 수준으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고보조금이 급격히 증가하는 주요 원인으로는 저출산·고령화와 복지 수요 증가로 기초연금, 의료급여, 영·유아 보육료, 가정양육수당 등 사회복지 분야 지출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산수요는 급증하는데 세수가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예산수요에 대한 근본적인 적정성을 따져봐야 한다. 정부도 국고보조금 수급 체계 정비를 포함한 대대적인 개편을 살펴보겠다고 하지만 국회에서 벌이는 선심성 쪽지 예산 남발 같은 묻지마 예산 따먹기에 얼마나 대응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마이너스 통장은 급할 때 한 번씩 쓰는 통장이지 상습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개인이든 국가든 경고 통장이 된다. 정부가 쓰는 마이너스 통장인 재정증권은 모든 국민이 쓰는 예산이다. 따라서 예산 항목중 군더더기나 선심성 항목은 과감히 없애야 한다. 예산이 투입돼 선순환 효과로 이어질 분야에 집중하는 마이너스 통장이 되도록 다시 한번 적정성을 따져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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