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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걸의 창건설화] 정혜결사 발원 도량 거조암(居祖庵)

  • 최종걸 주필
  • 승인 2019.12.09  14:17:16
  • 19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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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영천시 포곡읍 신원리 팔공산 동쪽 기슭에 있는 거조암. 사진은 네이버 거조암에서 캡쳐
거조암은 영산전(靈山殿)에 모셔진 526분의 나한들이 기도 객들의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나한 기도 도량이자 타락한 고려불교의 개혁을 발원한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이 작성된 곳으로 더욱 더 알려져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포곡읍 신원리 팔공산 동쪽 기슭에 있는 은해사 산 내 암자이다.

정혜결사(定慧結社)는 정(定)과 혜(慧)를 함께 수행해야 한다는 정혜쌍수론(定慧雙修論)으로 세속화되고 정치와 결탁한 타락한 불교를 지양하고 선(禪) 수행에 전념하자는 불교 개혁 운동이었다.

이를 주도한 고려 시대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1210) 스님이 정혜결사를 하기 이전에 각 종파의 큰 스님들을 찾아 그 뜻을 알리고, 거조암에서 몇 해 동안 수행을 했다고 한다. 고려 후기에 교종과 선종을 통합시키면서도 불교계 개혁을 발원한 지눌 스님은 1188년 거조암에서 처음으로 선정(禪定)을 익히고 힘써 지혜를 닦자는 맹문(盟文 정혜결사문)을 지었다고 한다. 이후 결사 도량을 찾던 중 지금의 순천 송광사인 수선사(修禪社)로 옮겨, 정혜결사(定慧結社)를 했다고 한다. 그 결사의 본원지가 바로 거조암에서 출발했음을 사적기가 소개하고 있다.

바로 그 거조암의 영산전 안에는 법화 화상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빌려 앞산의 암석을 채취해 조성했다는 석가여래 삼존불과 오백나한상, 상언(尙彦)이 그린 탱화가 봉안돼 있다. 그중 법계도(法界圖)에 따라 봉안된 나한상은 그 하나하나의 모양이 특이하고 영험이 있다고 한다. 그 영산전에서 3일만 정성을 들여 기도하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설화 때문이다.

거조암(居祖庵)을 소개하는 안내문에도 “아미타불이 항상 머문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라고 쓰여 있지만 “선종(禪宗)의 조사 스님인 조(祖)가 머문다는 거(居) 한다”라는 의미로 풀이하는 스님들도 있다.

거조암 영산전은 우리나라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1375년 고려 시대의 대표적인 건물로 안에 모셔진 나한은 불교에서 말하는 아라한이다. 아라한은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최고의 높은 깨달음을 이룬 성인으로 더는 윤회를 하지 않아 공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다. 오백나한은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 이후 칠엽굴에 모여 경전을 편찬한 500명의 아라한을 상징한다. 거조암을 창건했다는 법화 화상이 신통력을 발휘해 각 불상이 스스로 제자리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내려오는 설화에는 바로 그 오백나한들은 거조암 인근 도둑 떼들이 스님의 신통력으로 모두 출가해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로 변장한 스님이 소를 훔치려 했던 500여명의 도둑을 교화시켜 깨닫게 했다는 것이다. 누구라도 수행하면 깨달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내려오는 이야기는 이렇다. 거조암에 수행 중인 도인 스님이 어느 가난한 농부의 밭을 지나가다 잠시 쉬는 사이 조를 밟아 미안한 마음에 그 집 소로 변해 3년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꾼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 같은 소문이 인근에 퍼지자 그 소가 자기 집에서 나간 소라고 우겨, 농부는 소를 무서운 얼굴로 쫓아냈다고 한다.

하지만 소는 요지부동으로 3년을 그 집에서 일했다고 한다. 3년이 되던 어느 날 소가 주인에게 “이제 때가 됐습니다”라면서 “저는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갑자기 소가 말을 하자 겁이 난 집주인이 소에게 황망해 하자 “제가 주인님 밭곡식을 망가뜨려 그 빚을 갚기 위해 온 것이니 괜찮다”면서 떠나려 하니 잔치나 한번 베풀어달라고 했다. 주인은 흔쾌히 잔치를 열어 사람들이 몰려들자 소가 짙은 안개를 내뿜으면서 어느 틈에 스님으로 변신해 합장하는 것이었다. 소문난 잔치에 몰려든 사람들도 놀라 소에서 스님으로 돌아온 그 스님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합장을 했다. 잔치에 모여든 사람 중에는 자기 소라고 우긴 바로 그 500여명의 인근의 산적들도 있었다.

이에 스님은 “너희들은 남의 소를 빼앗으려는 도적의 마음을 먹었으니 죗값으로 소가 되겠냐? 아니면 참회해 성불하겠느냐?”라고 꾸짖자 스님을 따르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스님은 그들을 거조암으로 데리고 가 불도를 닦게 해 지금 거조암에 안치된 오백나한이라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내려온다.

이는 불교 경전 중에 나오는 내용을 각색, 영험 도량이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알기 쉽게 풀이한 것으로 보인다.

최종걸 주필 jgchoi62@dtoday.co.kr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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