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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모두가 피해자"…춘천대첩의 교훈 '안보가 경제'

  • 유경석 기자
  • 승인 2020.06.25  14:31:38
  •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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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방부 6·25전쟁 70주년 다양 행사
6·25전쟁 3대 전승 불구 홍보 미흡
다크 투어리즘 등 안보관광화 목소리

   
▲ 6.25전쟁 당시 공방전 흔적으로 남은 소양1교 총탄 자국. 사진=김현수 기자

[일간투데이 유경석 기자] 6·25전쟁에서 한국군 단독으로 승리한 춘천지구전투. 국방부가 지정한 3대 전승 중 한국군 단독으로 싸운 것은 춘천지구전투가 유일하다. 이런 까닭에 춘천대첩, 또는 제2의 행주대첩이라는 평가도 있다. 북한군 포탄이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軍·警·民·學이 함께 포탄을 나르고 주먹밥을 나누며 전선을 지켜낸 까닭이다. 춘천대첩을 이끈 춘천시민과 한국군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춘천시는 구국의 위대한 도시이고, 시민이기 때문이다. 구국의 도시로 춘천을 브랜드화하고, 춘천대첩을 대표적인 안보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전쟁이나 학살처럼 비극적인 역사 현장이나 대규모 재난재해가 일어났던 곳을 돌아보며 교훈을 얻는 여행인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도 거론된다.

[글싣는 순서]

1. 송가인과 춘천, 기억의 소환…'포로 이승만' 막았다
2. 軍·警·民·學 뭉친 '구국의 항전'…춘천은 6일을 버텼다
3. "전쟁은 모두가 피해자"…춘천대첩의 교훈 '안보가 경제'

국방부는 6·25전쟁 70주년 호국보훈의 달(6월)을 맞아 6·25전쟁 70주년 사업을 시행중이다. 참전용사의 헌신과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한반도 평화와 번영에 대한 국내외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다.

국방부 3대 전승행사로 오는 9월 인천상륙작전, 10월 낙동강지구전투, 11월 춘천지구전투를 기념하는 행사를 마련한다. 또한 육군(화령장전투·38선 돌파), 해군(대한해협해전), 공군(공군작전 전승), 해병대(서울수복) 각 군별 행사도 진행된다.

평화체험행사로 6월부터 9월까지 고성·철원·파주를 잇는 DMZ 평화의 길에 산재한 6·25전쟁 전적지와 국가수호시설을 답사하는 청년 평화 발걸음 등도 진행한다.

국가보훈처 역시 세대간 공감과 소통을 위해 역사학과 교수, 학생 등 시민이 참여는 6·25 역사 토크콘서트를 비롯 예능프로그램 등 TV 속 6·25전쟁을 추진한다.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70주년 사업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제고하고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을 각인시키는 계기를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국방부 3대 전승행사는 인천상륙작전, 낙동강지구전투, 춘천지구전투다. 전투재연을 통해 국민들의 승전의식을 고취하고, 참전용사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추진된다. 2010년 군사편찬연구소에서 선정한 6·25전쟁 주요전투 중 중요한 영향을 미친 10대 전투를 기초로, 2011년 6․25 기념사업팀에서 선정했다. 10대 전투 중 국민 계도의 장으로 활용이 가능하고 지자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대표전투를 선별한 것이다. 국방부 10대 전투는 춘천지구전투, 오산전투, 낙동강지구전투, 인천상륙작전, 평양탈환작전, 초산전투, 장진호전투, 지평리전투, 현리전투, 백마고지전투다.

하지만 춘천지구전투는 인천상륙작전이나 낙동강지구전투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6·25전쟁이 미군과 유엔군 참전 중심으로 기록·교육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전쟁 초기 대응과 관련 한국 정부와 한국군에 대한 불신이 크고, 서울이 개전 사흘만에 함락된 데 대한 수치심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춘천시 수변공원길에 위치한 춘천지구전적비. 사진=김현수 기자

6·25전쟁의 가장 큰 특징은 북한군 수뇌부가 공지합동전력운영이 미흡했다는 점이다. 전쟁기념사업회의 한국전쟁사를 보면 당시 북한군은 총 198대의 비행기를 보유했다. 하지만 개전 초 서울 상공에 출현한 것 이외에는 전투기록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는 지상군이 빠르게 점령 중이었던 이유도 있지만 공군력 보호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미군 참전 시 제공권 확보 여부가 전쟁 승패의 관건인 까닭이다. 이와는 달리 비행기를 조종할 비행사가 부족했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실제 일본에 주둔 중이던 미국 극동사령부소속 공군이 전투에 참가하면서 제공권을 장악했고, 북한군은 야간전투 위주로 기동하는 특이한 전쟁 양상을 보이게 된다. 6·25전쟁이 제공권 싸움이었다는 점에서 지상군 중심인 한국군의 초기 전투는 주목받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개전 초기 신성모 국방장관의 허언과 무능을 감추려는 국방부 차원의 조치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보인다. 실제 6월 26일 신성모 국방장관은 중앙방송을 통해 "침입한 적은 국군의 반격으로 후퇴하고 있다" "옹진의 제17연대가 해주시를 점령했다" "국군의 일부는 38선에서 20㎞까지 북진했다"는 등 거짓말을 했다. 당시 의정부가 함락되고, 한국군은 도봉산-수락산 전선에서 방어선을 형성하며 철수 중이었다.

신성모 국방장관의 거짓방송은 춘천지구전투에도 영향을 미쳤다. 춘천에서 지휘 중이던 김종오 제6사단장은 신성모 국방장관의 '제17연대 해주 돌입' 방송을 믿고 소양교(현재 소양1교) 파괴를 거부했다. 역습을 할 때 활용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역습은 실행되지 못했다. 27일 12시경 김종오 사단장과 육군 참모부장과 전화통화가 이뤄진 후에야 당시 전선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고, 역습을 통한 38선 회복이 아닌 지연방어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소양교 전선은 27일 12시30분경부터 시작된 집중 공격으로 무너졌고, 북한군은 춘천 시내로 진출할 수 있었다. 만약 26일 20시경 공병대대장의 건의대로 소양교를 파괴했다면, 북한군 주력의 춘천 점령은 더 지체되면서 전선 운영에 여유를 갖는 한편 시민들은 좀 더 안전한 상황에서 피난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봉의산에서 천연 장애물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지휘하던 김종오 사단장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김종오 사단장은 북한군 첫 포성이 울린 이후 2시간 만에 경계진지가 무너진 후, 가마골~양지말에서 우두산 축선으로 연결되는 소양강 이남 진지를 구축하면서 전열을 가다듬은 후 선전했다.

춘천시 소양강변에 조성된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에 설치된 조형물. 아직도 포성이 들리는 듯 하다. 사진=김현수

실제 27일 15시경 현재 춘천송암스포츠타운~의암공원~교동~후평시장~적골저수지~스프링베일GC을 연하는 제1시가지 방어선이 무너지고, 17시경 북한군은 국사봉~남춘천역~약사리고개~거두리를 연하는 제2시가지 방어선을 넘어선다. 18시경 안마산~학곡리~춘천교도소~대룡산으로 이어지는 제3시가지 방어선이 무너지면서 춘천을 포기한 채 주력부대는 홍천으로 이동한다.

결국 춘천지구전투 최후방어선인 원창고개는 제7연대 2대대가 맡았다. 천연 장애물인 소양강이 북한군 수중에 들어간 이후 불과 5시간만에 춘천 시내가 완전 점령된 것이다. 북한군은 28일 자정부터 가평 인근까지 진출했다.

28일 13시경 제7연대 2대대가 모래재에서 연대본부와 합류하는 것으로 춘천지구전투는 마무리된다. 이후 홍천에서 합류한 제6사단은 28일 15시경까지 북한군 제12사단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18시경 소대별전투로 철수하면서 원주에서 집결했다. 원주는 7월 2일 함락됐다. 제6사단은 춘천-홍천지구 방어전투 이후 횡성-원주-충주를 거쳐 8월 1일 낙동강 전선에 배치된다.

북한군은 화천에 제2사단을, 양구에 제12사단을 배치하고 6월 25일 04시 공격준비사격을 시작으로 전면전을 벌인 이후 7월 3일에야 수원을 공격할 수 있었다. 이는 6월 25일 당일 춘천을 점령하고, 26일 가평-덕소-하남으로 도하한 후 잠실-동작-등촌을 연하는 서울을 포위하려던 작전계획보다 일주일 지체된 것이다. 김일성은 춘천전투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어, 가평을 점령한 6월 28일 제2사단장 이청송 소장을 경질했다. 이후 제2사단장은 최현 소장이 맡았다.

춘천지구전투는 6·25전쟁 초기 국군 제6사단이 가평~춘천∼홍천지역에서 6월 25일부터 30일까지 북한군 제2군단 예하 제2사단과 제12사단의 공격을 막아 한국군의 조기 붕괴를 막아낸 전투를 말한다.

현재 춘천지구전투의 승리를 기리기 위해 춘천시 삼천동에 춘천지구 전적기념관이 운영중이다. 또한 춘천시 근화동 소양강변에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을 비롯 시내 곳곳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홍천군 화촌면에 육탄용사전적비가 있다.

6·25전쟁 70주년을 맞아 춘천지구전투의 의미를 되새기고, 춘천 시내에 산재한 전적지를 둘러보는 '생활 속 안보관광'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장순휘 전 국방부군사편찬연구소 연구위원(정치학 박사)은 "춘천대첩은 구국의 도시 춘천의 대표적 안보브랜드가 돼야 한다"며 "매년 역사적인 춘천시의 공식행사로 안보축제화해서 시민적 명예와 긍지를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장순휘 박사는 춘천지구전투를 발굴하고,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 조성을 제안한 장본인이다.

차주건 춘천지구 전적기념관 관장(한국자유총연맹 강원도지부 사무처장)은 "진지구축부터 탄약, 군량보급 등 시민과 학생 등이 지원하는 등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었던 특이한 현상"이라며 "'평화를 위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처럼, 안보에 대한 민관군의 공감대 형성만이 민족화해 협력과 민족통일을 위한 길"이라고 말했다.

남상규 강원도의회 의원(더불어민주당. 춘천4선거구)은 "전쟁은 모두가 피해자이지만, 춘천은 위대한 도시"라며 "춘천지구전투를 기념해서 자부심을 갖는 시민의식을 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상규 의원은 구국봉사대상, 전적지 관광코스, 시민안보교실, 영화제작 등을 구상중이다.


유경석 기자 kangsan0691@naver.com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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