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메이지의 그늘]②호국영령과 일본식 애국주의

  • 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
  • 승인 2020.08.31  14:17:34
  • 21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구글+
네이버 밴드
네이버 블로그
네이버 폴라
핀터레스트
URL 복사
default_news_ad2

- 일본, 대외팽창 과정 전몰자 추모 통해 국가 통합 도모
메이지 유신 이후 승승장구 경험으로 군국주의·애국주의 구분 불가

   
▲ 1944년 일본은행에서 발행한 10전 짜리 지폐. 왼쪽에는 '팔굉일우'라는 글씨가 새겨진 탑, 가운데 위에는 열여섯 꽃잎으로 된 국화꽃이 새겨져 있다. 열여섯 국화꽃잎은 일본 황실을 상징하는 문양이지만 팔굉일우의 8을 중복한 숫자이기도 하다. 일본인이 좋아하는 88은 위로 오르는 뱀 두 마리가 서로 얽혀있는 모양이자 거기서 나오는 힘이기도 하다. 욱일기에서 빛이 열여섯 방향으로 뻗어나가는 모양을 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의미이다. 자료=위키피디아

[일간투데이 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 보수는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호하고[保] 지키는[守] 태도다. 그런데 일본의 보수주의자들은 대체로 한국을 반대하거나 싫어한다. 이들이 보호하려는 것과 지키는 행위에 한국은 걸림돌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 일본 보수와 한국 보수의 차이점

극우 단체인 '재특회'(在特會[자이토쿠카이]·재일 한국인의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 모임)의 혐한(嫌韓) 시위가 대표적이다. 보통 한국인 입장에서는 불쾌하고 무례하지만 일본의 보통 보수주의자들에게는 자기가 차마 하지 못할 말을 대신 해주는 시원함이 있다. 주위로부터 보이지 않는 내면적 지지를 받기에 이들이 공공연한 혐한 발언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에서 보수주의자들은 일종의 '애국주의자'(愛國主義者), 일본 중심적 사유를 하는 '일본주의자'(日本主義者)들이다. 한국의 보수나 우익은 북한·미국·일본·중국 등과의 관계나 거리에 따라 한국중심성이 약화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친일'이나 '친미'적 태도로 인해 정작 한국적 정체성이 약화되기도 하지만 일본의 보수 세력은 일본 중심적이지 않았던 적이 별로 없다.

특히 메이지 시대 이래 승승장구하던 정복주의적 경험은 강한 일본을 꿈꾸는 이들에게 일종의 향수로 작용한다. 일본의 보수는 기본적으로 이러한 정서의 연장선에 있는 일본 중심의 애국주의자들이다.

이러한 일본중심주의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일본을 대하는 적절한 태도를 취할 수 있고 한반도와 동아시아 평화의 가능성도 상상할 수 있다. 일본적 애국주의는 어디서 어떻게 확립된 것일까. 이를 알려면 다소 의외일지 모르지만 일본식 정치와 종교의 관계를 보아야 한다. '정치적 종교' 또는 '종교적 정치'가 통용되는 일본문화의 심층을 이해해야 한다.

◇ 호국영령과 애국주의, 일본 우익 이해의 코드

일본 보수 세력의 기원은 조상제사를 통해 국가통합을 이루려는 메이지 정부의 정책과 연결된다. 메이지 정부에서는 조상 제사를 강조했다. 이때의 조상이란 신의 후손인 천황가로 소급된다. 지난 호에 전술했듯이 19세기 후반 서세동점의 혼란기 일본에서는 하급 무사들이 메이지 천황을 내세워 새로운 국가를 만들고자 했다.

국가의 사상적 통일을 위해 민중적 정령 신앙 전통인 '신도'(神道)를 근간으로 하는 조상 제사 형식을 보급해 국가 통합을 도모한 것이다. 후손이 조상의 혼령을 모시듯이 일본인이라면 일본의 기원이 되는 신과 그 후손인 천황을 모시고 숭배해야 한다는 정책을 펼쳤다. 그런 정책이 상당 부분 성공했다.


새로운 정부를 만들어가는 과정에 각종 전란도 벌어졌다. 이때 죽은 이의 영혼을 국가 차원에서 제사하는, 일종의 '제사의 정치학'으로 사회를 통합하면서 정부의 정책도 정당화해나갔다. 이런 배경에서 '호국영령'(護國英靈)이라는 언어와 개념도 발명됐다.

호국영령은 '나라를 수호하다 죽은 꽃다운 영혼'이라는 뜻이다. '영령'은 본래 메이지 초기 군대에서 특수하게 사용되던 용어였다가 일본이 국운을 걸고 벌인 러일전쟁(1904년-1905년) 당시 언론들이 자국 전사자에 대한 존칭으로 빈번하게 사용했다.

특히 러일전쟁은 동양 일본이 서양을 상대로 승리한 전쟁이라는 점에서 일본 군국주의자들에게는 자긍심의 원천이었다. 영령이라는 말도 러일전쟁 시기를 거치면서 '호국'의 이미지가 부여된 '전몰자의 영혼'을 지칭하는 일반 언어로 바뀌었다.

이 영혼 숭배는 좁은 의미에서는 종교적 행위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통합하는 정치적인 행위였다.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일본에서는 여전히 정치적 종교 혹은 종교적 정치가 통용되고 있다. 호국영령은 일본의 지배를 당했던 한국에도 전해져 이제까지 사용되면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하게 활용되고 있다.

◇ 팔굉일우와 군국주의

호국영령은 일본이 수호하고자 했던[護] 국가의 성격[國]과 직결된다. 메이지 정부가 만들려는 국가는 천황제 중심의 수직적 국가였다. 메이지 정부는 문화적으로는 정치적 종교로 국민을 통합시키면서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부국강병책으로 군국주의의 길을 걸었다. 청일전쟁을 시작으로 러일전쟁, 중일전쟁, 이와 연결된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유럽 열강이 걸었던 제국주의의 길을 따라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들을 점령하고 지배했다.

태평양전쟁 때는 '여덟 방향, 즉 온 세계가 한 집'이라는 '팔굉일우'(핫코이치우·八紘一宇)를 모토로 내세우며 그 '한 집'이 바로 일본이라는 정서를 확장시켰다. 그 과정에 희생된 군인들을 칭송하며 군사주의를 고양시켰고 전쟁을 정당화하며 국가적 통일성을 견지해나갔다. 메이지시대 이래 일본은 이런 식으로 제국주의, 군국주의적 국가를 추구했다.

패전 이후 시대가 바뀌었고 지금은 과거사에 대한 일본 내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지만 일본이 과거에 누렸던 일본 중심의 세계, 그리 나아가는 길 혹은 그 정서를 고수하려는 세력이 여전히 크다. 일본의 우익은 대체로 이런 정서를 유지하며 특히 아베 정권은 그 핵심에 있는 세력이다.

물론 이런 정서는 기본적으로 일본인에 의한 일본을 위한 길이다. 문제는 제국주의의 경험 이후 군국주의와 애국주의가 별반 구분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군국주의가 애국주의로 둔갑했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유럽 혹은 서양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러일전쟁 이래 일본의 우익은 물리적 힘을 갖춰 심지어 전쟁을 통해서라도 옛 영화를 회복하고 싶어 하는 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 dtoday24@dtoday.co.kr

<저작권자 © 일간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ad47
ad46
default_news_ad5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ad49
ad51

4차산업

빅데이터VIEW

item90

포토뉴스

1 2 3
item84
ad54

오피니언

ad53

사회·전국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