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을 통한 조상신 제사, 국가를 '확대된 가족'으로 간주
일본인, 의식하든 안하든 '천황교' 시스템 안에 살고 있어
유력한 유학자가 전하는 다음의 일본적 정서도 이를 잘 반영해준다.
"천황가의 역사는 천황가만의 것이 아니다. 그 연속성에서 일본인들은 일본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일본인에게 족보는 없다. 하지만 선조 이래 줄곧 일본열도에서 살았다. 그래서 이같은 천황가로 상징되는 한결같은 시간의 흐름이야말로 일본인이 일본에서 여태까지 같은 시간을 함께 살아온 시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천황가의 역사는 그리운 조상들과의 시간적인 동질감을 느끼게 하고 민족으로서의 동일감·귀속감을 상기시키는 상징적 표현인 것이다. 천황제라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그런 의미를 지니고 있다."(가지 노부유키, '침묵의 종교 유교', 경당, 251-252쪽)
천황제가 일본적 통일성의 근거로 작용해왔을 뿐만 아니라 상당 부분 일본인의 삶 속에 문화화 혹은 일상화되어 왔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일본인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사실상 '천황교'라 할 만한 시스템 안에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일본 정치적 시스템의 근간인 '제사'는 오랜 역사적 관습이라고 강조해온 메이지 시대 정치적 구호가 일본인에게 성공적으로 수용되면서 일본인은 스스로 '종교인'이라는 의식은 가지지 못하면서도 넓은 의미의 종교적 양식에 익숙해져온 것이다.
실제로 보통의 일본인은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무종교'로 규정하곤 하는데 이 말 속에 오히려 일본적 종교성이 깊게 반영되어 있다. 아마 도시마로(阿滿利麿)가 잘 분석하고 있듯이 일본인의 생활 방식 안에는 오랜 '종교적' 모습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특정 종교 단체에 속해있지는 않기에 스스로를 '무종교'라고 규정하지만 실제로는 문화화한 애니미즘적 혹은 자연신앙적 종교성을 강하게 보여준다. 이노우에의 말마따나 "신도습속이라고 부를 만한 많은 전통적 습속의 기본적 기능은 변함이 없고 근대에 새롭게 펴진 습속이라 해도 그 배후에는 전통적인 종교 관념이 면면히 흐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본인은 이른바 '일본교도'로 살아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말이다. 필자가 언젠가 한국인은 '한국교'라고 불릴만한 문화 안에서 그 문화에 어울리는 삶을 자신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는데(李贊洙, "'文'に '化'する - 韓國宗敎文化論", '中央學術硏究所紀要' 第37号, 2008) '일본교'의 경우는 그 삶의 방식이 더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그 '일본교'의 내용을 천황제가 더 구체화시키고 강화시켜온 것이다.
1945년 패전 이후 천황은 '인신(人神)'이라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하나의 상징적 존재로 바뀌었지만 상당수의 일본인이 어떤 이유에서든 그 상징성을 유지하는 것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천황제의 영향력이 일본인의 내면에 계속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일각에서 특히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천황제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하지만 천황제 혹은 천황가가 유지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일반적인 목소리가 지속된다. 이른바 '천황교'가 일본 문화 안에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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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수 보훈교육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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