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훈 박사(서경대학교 나노융합공학과 학과장)
[일간투데이 김종훈 칼럼리스트] 초연결 사회에서는 노드(node)라 불리는 다중연결점-분기점에 서는 것이 어떤 수단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노드의 특징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일파만파의 자리'인지라 적은 노력으로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어 정치 권력도 노드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이용하려 한다.

정보전달의 방향이 상위와 하위 계층, 지배와 피지배 계층을 나누는 수단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사회적 감시가 필요한 때다. 권력과 부를 위해서는 이러한 노드가 되거나 노드의 중심에 접근해야 한다.

이런 노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전통적인 언론, 포탈 사이트와 거대 소셜 미디어들이고, 개인이 노드 그 자체인 경우가 많은 팔로워와 구독자를 가진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들이다.

김장철을 맞아 배추가 본격적으로 출하되면서 배추값은 떨어졌지만 이번에는 작황이 좋지 않은 고추값 상승 때문에 올해도 김치가 금치로 불릴 예정이라고 한다.

1978년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그 해에는 고추 농사가 극심한 흉년이 들어 국산 고추를 전혀 구할 수 없었다. 멕시코산 말린 고추를 구매할 수 있는 배급표를 동회(주민센터)에서 발급받아 어머니와 함께 고추를 가지러 갔던 기억이 있다.

고추를 가지러 가며 꼭 잡고 걷던 어머니의 손이 참 좋았다. 솜씨 좋게 말린 고추 두 자루를 머리에 인 어머니와 함께 무엇이 좋은 지도 정확히 모르지만 부자가 된 근사한 기분으로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충분히 행복했다.

덜 연결된 사회에서 가족과 함께 했던 시간의 행복은 초연결 사회에서 다른 가정과의 비교가 쉬워지고, 어느 정도 정량화 된 상대적 행복의 기준이 정해지면서 오히려 희석되고 있다.

4차산업혁명 시대, 전 세계가 네트워크로 묶인 초연결 사회에서도 고추값 걱정을 피할 수 없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러면서도 행복은 갈수록 비교 당한다.

'초연결 사회'는 미국의 IT 컨설팅 회사인 가트너 그룹에서 모든 관계 사이에 '네트워크 기술(다단계 기술 아님)'이 개입된 새로운 트렌드를 바라보며 처음 사용하였다.

코로나 대유행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초연결의 끈은 더 공고해졌고,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초고속 인터넷 선진국에서는 이 초연결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초연결의 작은 흔적들을 이용하여 코로나 19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하고 방역에 도움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고민도 만만치 않다. 학생들 중에 자신이 가진 문제를 인식하고 상담하러 오는 학생들은 드물게 좋은 학생이다.

때때로 다른 과목의 장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하여 실험실의 장비나, 3D 프린팅 장비를 사용하겠다고 문의하는 학생은 훌륭한 학생이다.

기사 시험을 준비하기 위하여 실기 시험에 출제되는 실험을 학과 실험실에서 미리 해보고 싶다며 송구스러워하는 학생에게 '뭔가 해보겠다고 하는 넌 정말 드물게 훌륭하고 열정이 넘치는 학생이다. 솔직히 귀찮은 마음도 있지만 네가 준비하는 시험을 도와줄 수 있다는 건 참 기쁜 일이구나.' 말해 준다.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 할 수 있느냐고 묻는 학생에게 정말 따라서 해볼 생각이 있으면 방법을 가르쳐 줄 테니 해보겠느냐 묻고 그러겠다고 다짐을 받은 후에 "내일부터 매일 아침 6시 5분에 도서관에 앉아 있어 그런다고 전체 수석 성적이 나오지는 않을 거야.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매일 그 시간에 도서관에 앉게 되면 다른 세상이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 그건 보장하마"라고 이야기해 주는데, 매년 다섯 명 남짓 이 대답을 듣고 가서 10년 넘는 기간 동안 50여명에게 말해 주었지만 그런 학생 중 두 명 정도가 비슷한 방법으로 공부라는 것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잘은 아니지만 제대로 초연결 사회의 융합기술에 대응하기 위한 융합학문을 배운다고 해도 새로운 아이템이나 해결방안은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기초에서 나오는 것을 본다.

기업체 연구개발 과제를 수행하면서 석박사 때보다 나아졌다고 느끼는 순간은 실험에 사용된 테프론용기, 유리용기들을 설거지할 때다.

아침 일찍 도서관에 앉는 것, 실험도구들을 깨끗이 하는 것, 실험장치들을 매일 같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 같은 초연결과는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지루하게 반복되며 축적되는 일들이 반도체 공정과 바이오, 신약개발 분야의 기저에 깔려 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특정 분야 전문가보다는 그 분야 유튜버를, 감사 대상 공공기업 직원보다는 해당 기업 유명 캐릭터를 부르는 모습도 보았다.

그 만큼 정치권에서도 노드가 도깨비 방망이처럼 여겨진다는 반증일 것이다. 모두가 초연결 시대의 별이 되고 싶어 한다. 내 자녀가 초연결 시대의 노드가 되기를 바란다.

제 2의 박막례 할머니가 되는 일도, 제 2의 흔한 남매가 되는 일도 가능할 것 같아 보여 직장을 그만두고 수십 만 팔로워를 자랑하는 퇴직자 유튜버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별처럼 빛나는 노드가 되려면 폭포 및 돌처럼 단단하게 연단된 기초가 필요하다.

천문학자들이 별이 없는 공간으로 망원경을 돌렸을 때 수천 억 개의 은하들이 거기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처럼 빛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자기 실력을 다져야 진정한 노드가 된 이후의 날들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설사 영영 빛이 나지 않는다 해도 매일 궤종시계의 동그란 추처럼 반복되는 일상을 더 치열하게 감당하며 살아내는 것이 빛나는 오늘을 만든 선배들이 선택했던 방법이다.

초연결 사회의 네트워크는 트리구조의 연결점에 노드가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노드들이 가진 영향력에 맞는 책임을 요구할 수 있을 만큼 단방향 정보전달자로서의 노드의 수익과 입지가 확실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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