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의 아시아나 인수합병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두 항공사 모두 기간산업안정지원금으로 연명 하던 차에 인수합병이라는 절차에 돌입했지만 이게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인수합병(인수·합병) 등 시장 독점을 강화하는 행위나 가격 담합 등 소비자 및 다른 기업의 시장진입을 방해하거나 이익을 침해하는 각종 불공정 행위를 금지하는 소위 반독점법 때문이다.

각국은 기업들이 담합하거나 기타 제휴 등을 통해 해당 시장에서 사실상 독점적 지위를 행사하거나 경쟁을 저하하는 경우 반독점법을 적용해 규제하고 있다. 반독점 정책을 시행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80여 개국에서 시행하고 있어서 이 정책대로라면 두 항공사의 합병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하늘길이 막혀 경영난을 겪는 기간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40조 원 규모로 조성된 정책 기금을 각각의 항공사에 수조 원을 지원해도 답이 없자 출구전략으로 합병이라는 카드를 꺼냈지만, 이번에는 주요 노선국의 반독점법 심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한 때도 현재 주요국의 독점법 여부를 받고 있는 것처럼 대한항공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아야 할 상황이다. 최소 4개국에서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해야 대한항공이 아시아나항공과 한 몸이 될 수 있다. 이들 국가 중 한 곳이라도 허가하지 않으면 합병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일본 당국으로부터 사전 기업결합 심사를 받아야 하는 사례에 해당한다는 점 때문이다. 각국이 자국의 기간산업에 독점적 요소가 있는지를 평가하는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그 기준을 충분히 충족시키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 미국은 두 회사의 미국 내 매출액(자산총액) 합이 1억9천800만 달러(2천370억 원·올해 1∼10월 평균 원/달러 환율) 이상이면서 피인수 회사의 미국 매출액이 9천만 달러(1천80억 원)를 초과할 경우 기업결합 심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대한항공의 올해 1∼3분기 여객 매출 1조7천600억 원 중 25% 이상을 미주지역에서 올려, 기업결합 심사 기준을 훌쩍 넘었다는 지적이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1∼3분기 여객·화물 등 매출이 2조8천920억 원인 만큼 두 회사의 합병은 미 법무부와 연방거래위원회의 심사 대상을 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미국보다 독점 규제가 까다로운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의 심사도 산 넘어 산이다. EU는 두 회사의 전 세계 매출액 합이 50억 유로(6조7천470억 원)를 초과하면서 두 회사의 EU 매출액이 각각 2억5천만 유로(3천370억 원)를 넘으면 합병심사를 받게 한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올해 1∼3분기 매출액이 8조 원이 넘는 점을 고려할 때 EU의 심사를 거쳐야 할 상황이다. EU는 지난 2011년 그리스 1·2위 항공사의 통합을 두고 합병 시 그리스 항공시장의 90%를 점유하는 회사가 나타난다며 불허했다. 국제노선에는 시장 경쟁 제한 효과가 크지 않다고 판단했으나 그리스 국내 노선에서는 독점이 발생, 소비자의 이익이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을 든 예이다. 독점에 따른 피해를 엄격하게 규제한 사례이다.

여기에 중국과 일본 등도 비슷한 규제를 두고 있다. 중국의 경우 두 회사의 전 세계 매출액 합이 100억 위안(1조7천140억 원)을 초과하면서 중국 내 매출액이 각각 4억 위안(690억 원)을 넘어서는 경우 심사를 받게 한다. 일본은 인수를 주도하는 회사가 일본 내 200억 엔(2천230억 원)을 초과하는 매출을 올리면서 피인수 회사의 일본 매출도 50억 엔(560억 원)을 넘기면 사전독점금지법에 따라 기업결합 심사 대상이다. 이들 규제대상 국가 가운데 한 곳이라도 기업결합을 통과하지 못하면 합병 자체가 안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덩치를 키우기 위한 기업 합병이 아닌 부실기업을 정리해서 기간산업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점을 적극 대응해야 할 대목이다. 산업구조 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한 선택을 해야하는 것이 경쟁국간 반독점법에 발목이 잡히지 않을 대책도 함께 세우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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