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실패.., 곧 국가의 실패입니다 – 12

▲ 사진=조광한 남양주시장

그동안 몇 차례 조선의 역사를 살펴봤습니다 8편-달콤한 부와 권력앞에 정의는 없었다. 9편-피할수 있었던최악의 고통,병자호란.10편-임금위에 군림한 세도정치.11편-백성은 안중에도 없는 그들만의 세계,붕당정치.

이제 조선의 역사 돌아보기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조선시대 500년 역사의 핵심은..세번의 패륜과 두분의 성군(聖君)입니다.

첫 번째 패륜 사건은 1398년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입니다.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세울 때 새 나라를 설계하고 한양도성을 건설한 분이 정도전입니다. 그는 백성을 위한 성리학적 이상향을 꿈꾸며 경제와 정치의 두 가지 개혁을 추진했습니다.

고려 말에 완전히 무너진 경제제도를 재건하기 위해토지개혁으로 균전제를 주장했습니다. 계민수전(計民授田), 즉 백성의 수를 세고 균등하게 땅을 나눠주는 방식입니다.

귀족들이 토지를 독점하고 백성들은 굶주렸던 현실을 개혁하기 위한, 지금으로 치면 중산층을 강화하는 정책이었습니다.

그러나 균전제는 너무 혁명적이어서 실패했고,관리에게만 조세의 권리를 주는 과전법이 시행되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꿈은 일단 실현되지 못한 겁니다.

정치는 능력 있는 신하와 현명한 왕이 협치하는 관료지배체제인 재상총재제를 꿈꿨습니다. 무능한 왕이나 전횡을 일삼는 왕이 나라를 망치는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통치구조의 변화를 목표로 했습니다. 그러나 왕자의 난으로 목숨을 잃고 그 꿈도 좌절되었습니다.

왕자의 난은 태조 이성계의 다섯 째 아들 이방원이 일으켰습니다. 개국의 걸림돌이던 정몽주를 제거했지만 개국공신에 들지 못했고, 이복 막내가 세자가 되었고, 태조와 정도전이 왕족의 기반인 사병(私兵)을 혁파하려하자 정도전과 신하들, 세자 등 이복동생들을 죽인 사건입니다.

이방원은 둘째 형을 왕으로 추대해 정종으로 앉혔다가 곧 제3대 임금 태종으로 즉위했습니다. 정도전은 왕권과 신권이 조화를 이루는 신권(臣權)중심의 왕도정치를 꿈꿨지만, 태종이 즉위하며 조선은 왕권(王權)중심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정도전은 500년 후 고종 때에 와서야 복권되었습니다.

왕자의 난은 아들이 아버지를 짓밟은 사건이고, 사실상 조선의 건국이념과 가치가 무너진 사건입니다.

두 번째 패륜사건은 1453년 세조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입니다.
계유정난은 단종이 12살에 임금이 되자, 수양대군이 자신의 형님인 문종이 승하하며 단종을 부탁했던 김종서, 황보인 등 400여 명을 참살하고 자신의 친동생인 안평대군을 죽인 사건입니다.  

수양대군은 신하의 모양으로 여러 중직을 겸하며 권력을 장악했고, 2년 후에는 제7대 임금 세조로 즉위했습니다. 조카 단종은 강제로 상왕이 되었다가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사육신 사건이 일어나자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고 결국 사약을 받았습니다. 

계유정난은 삼촌이 조카를 죽인 사건으로 아들이 아버지를 짓밟은 왕자의 난과 유사한 조선의 인륜(人倫)이 무너진 패륜사건 입니다.

세 번째 패륜 사건은 1623년의 인조반정입니다.

제15대 임금 광해군은 청나라와 명나라 사이의 중립외교를 추진합니다. 그러자 권력을 잡으려는 서인들이 명을 섬겨야 한다는 현실착오적 사대의 명분으로쿠데타를 일으켜 광해군을 쫓아내고,쿠데타 세력은 친명반청 정책으로 병자호란의 참화를 불러옵니다.

인조반정은 신하가 임금을 쫓아낸 사건으로 군신(君臣)의 의가 무너진 패륜사건 입니다.3대 패륜사건들로 이상사회를 꿈꿨던 조선은 서서히 무너졌습니다.충,효,군신(君臣)의 의리라는 가치는 땅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조선의 역사를 빛낸 두 분의 성군이 계십니다.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은 왕자의 난을 일으킨 아버지 태종이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잔혹한 통치를 직접 보고 경험했음에도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는 어진 정치를 펼쳐 조선 500년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백성을 위해 읽고 쓰기 쉬운 훈민정음을 창제했고, 집현전을 통해 많은 인재를 양성했으며, 과학기술을 장려해 천문관측기구인 혼천의, 물시계인 자격루, 해시계인 앙부일기 등을 제작했습니다.

아쉽게도 그 후 계유정난과 인조반정으로 조선의 국력은 기울었지만, 제22대 임금 정조대왕이 두 번째 성군으로 나라의 부흥을 도모했습니다.

규장각을 설치해 학문장려와 인재양성에 힘을 쏟고, 영조의 탕평책을 계승해 대통합을 추진했으며, 청나라의 앞선 문물을 받아들이고, 정약용과 함께 당시 최고의 과학기술을 이용해 수원 화성을 건설하고 개혁정치를 추진했습니다.

할아버지인 영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어린 시절의 끔찍한 경험을 이겨내고 쓰러져가는 나라를 일으켜보려고 몸부림쳤지만, 갑자기 승하하며 60년 세도정치가 시작되었고 조선은 급속히 쇠락하며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아버지를 쫓아낸 아들, 조카를 죽인 삼촌, 임금을 쫓아낸 신하, 세 번의 패륜사건으로 조선의 이념과 가치는 무너졌습니다.
반대로 인품과 성정이 뛰어난 두 분의 성군은 과거의 아픔을 딛고 백성을 위한 어진 정치와 개혁을 추구했습니다.

국가의 운명에 패륜이 얼마나 큰 폐해를 낳는지..훌륭한 자질이 얼마나 큰 기여를 하는지..조선의 역사에서 꼭 배우고 새겨야할 교훈입니다.

우리는 어떤 리더를 만나야 할까요..?

다음에는 화제를 바꿔 지구상에서 사라질 뻔한 도시,
폴란드 바르샤바를 다뤄보겠습니다..^^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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