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실패, 곧 국가의 실패 -17

▲ 사진=조광한 경기도 남양주 시장
‘1972년 6월 17일 새벽 2시 30분.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포토맥 강변을 끼고 위치한 워터게이트 복합건물의 경비원은 지하주차장과 계단 연결통로의 자물쇠가 테이프로 묶여 있는 점을 수상히 여기고 경찰에 신고합니다.

출동한 경찰은 사무동에 입주한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에서 복면을 쓴 5명의 괴한을 체포하게 됩니다.세계를 경악시킨 워터게이트 사건의 서막이었습니다.’

오늘은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사임한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사건은 닉슨의 재선을 도모한 비밀공작반이 워터게이트 빌딩의 민주당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되어 촉발된 미국역사상 최대의 정치 스캔들입니다.

제37대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외교적으로 눈부신 업적을 남겼습니다.1969년 ‘닉슨 독트린’을 발표해 세계는 냉전체제에서 벗어나 ‘데탕트’, 즉 긴장완화의 시대로 빠르게 접어들게 됩니다.

1971년 탁구팀이 중국을 방문한 ‘핑퐁외교'를 시작으로 1972년 2월, 닉슨은 미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해 죽(竹)의 장막을 걷어내고 ‘상하이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20여 년의 적대관계를 끝내고 양국 관계를 정상화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러나 1972년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임기 도중에 사임한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통령이 되고 말았습니다.

민주당 본부에서 체포된 범인들은 끝까지 단순 절도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3주 전에 이미 도청장치를 설치했고, 이번에는 고장난 도청기를 교체하려 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또, 범인들 중에 중앙정보국(CIA)전 요원과 닉슨 대통령 재선위원회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인물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게다가 거액의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가 선임되고,범인의 수첩에서 백악관 고위 관계자의 연락처가 발견되면서, 단순 절도가 아니라 대통령과 연관된 사건이라는 의혹이 일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백악관 측은 ‘하찮은 3류 절도사건’이라고 일축했고, 백악관과는 전혀 관계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 신문의 신참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디프 스로트(Deep Throat)', 이른바 ‘깊은 목구멍’이라는 익명의 고위 관리의 결정적 제보를 2년 넘게 집요하게 추적하면서 사건의 진실이 점점 드러나게 됩니다.

닉슨 대통령의 선거 비용 중 10만 달러 이상이 범인의 계좌로 들어갔다는 사실이 보도되고, 미 연방수사국(FBI)까지 수사에 착수하자 닉슨 대통령은 “백악관이나 행정부의 누구도 관련이 없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대통령과 측근들이 사건의 은폐와 축소를 지시하고 대통령이 비밀리에 전용할 수 있는 CIA 운용자금으로 증인을 매수하려다 실패한 정황이 하나둘 밝혀지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됩니다.

의혹이 증폭되자 특검과 상원 청문회가 열립니다. 증인으로 나온 대통령 전 참모는 대통령 집무실에 녹음 장치가 설치돼 있고, 대통령이 사건의 은폐를 지시한 내용이 녹음돼 있는 스모킹 건, 즉 결정적 증거가 있다고 폭로합니다.

녹음을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쳤지만 닉슨은 안보와 국가기밀 내용이 들어있다며 공개를 거부하고 기자 회견에서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사기꾼’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뇌리에 남아 오히려 그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74년 7월 연방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제출된 녹음으로 그가 사건의 은폐에 관여했으며, CIA에 FBI의 수사를 방해하도록 했고, FBI에 백악관까지 수사를 확대하지 말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그러자 하원에서 대통령 탄핵이 가결되고 상원에서도 가결될 것이 확실시되자 1974년 8월 8일, 닉슨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대통령직을 사임했습니다.

특검과 청문회에서는 닉슨이 도청 자체를 지시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통령이 사임할 정도로 사태가 커진 이유는 거짓말을 하고 은폐를 지시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은 도청 때문이 아니라, 거짓말 때문에 닉슨에게 등을 돌렸다.’고 할 정도로 닉슨의 거짓말은 국민의 신뢰를 완전히 무너뜨렸습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문(門)’이라는 뜻인 ‘게이트(gate)’가 권력형 비리 의혹, 부패스캔들 등의 의미로 쓰이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미국은 정치인에게 정직을 최우선 덕목으로 요구합니다. 미국 국민은 닉슨의 업적이 아무리 뛰어났어도 거짓말과 은폐, 도덕적 흠결을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지금 우리는 거짓말,은폐,도덕적 흠결을별 대수롭지 않게 건성건성 넘어가고 있는건 아닌지..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다음에는 미국 클린턴 대통령의 거짓말을 살펴보겠습니다.

*기고는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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