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선거 실패, 곧 국가의 실패-21

▲ 조광한 남양주 시장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모든 인간은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다.’우리에게 너무나도 상식적인 명제입니다.

그런데,아무도 이 명제를 생각조자 못했던 시대에 이 진리를 ‘상식(Common Sense)’으로 선포한 대표적인 선각자가 있습니다. 토마스 페인입니다.

오늘은 토마스 페인의 ‘상식’이라는 책과 미국독립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작고 얇은 소책자인 이 책이 미국 독립의 발화점이
되었고, 이 책으로 인해 미국은 독립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700년대 북아메리카대륙 동북부에는 13개의 영국 식민지가 있었습니다.13개 식민지마다 본국에서 각각 다른 총독이 파견되어 사실상 다른 나라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13개 식민지들은 영국을 도와 1756년부터 랑스-인디언 동맹과 7년간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영국은 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고 캐나다를 차지합니다.

전쟁 후 영국은 식민지 통제를 위해 서부 진출을 금지시키고 자치권을 제한했으며, 전쟁으로 지출한 국고를 메우기 위해 설탕세, 인지세, 홍차세 등을 신설했습니다.

프랑스를 물리치는데 협력한 식민지들은 자치권을 제한당하고 과도한 세금을 물게 되자 “대표 없이 세금 없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본국인 영국의회에 식민지 대표가 없으니 더 이상 세금을 내지 않겠다고 반발합니다.

영국정부는 설탕세, 인지세는 폐지해 주었지만 홍차세는 계속 유지했습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홍차수입업자들이 영국 상선에 침입해 당시에는 엄청난 고가 사치품인 홍자 수백 상자를
바다에 던져버리게 됩니다. 1773년 12월 16일에 발생한 보스턴 차 사건입니다.

영국은 그에 대한 보복으로 1774년 보스턴항을 폐쇄하고 매사추세츠 자치정부를 해산합니다. 그리고 식민 지배를 자치제에서 직접통치로 바꾸려고 시도하게 됩니다.

1775년 4월 매사추세츠 주에서 무력 충돌이 일어나 식민지인 8명이 전사하자, 한 달 뒤 식민지 대표들은 필라델피아에 모여 전쟁을 결의하고 연합군을 조직해 조지 워싱턴을 총사령관에 임명 합니다. 8년간의 미국 독립전쟁이 시작됩니다.


사실은 이 전쟁은 독립전쟁이 아니었습니다. 대다수 식민지인들은 독립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총사령관이자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독립선언문 작성에 참여한 벤자민 프랭클모두 독립에는 반대했었고, 일반 여론도 영국에 기대어 살자는 쪽이 훨씬 우세했습니다.

그들은 독립이 아니라, 보다 나은 대우와 독자적인 조세권을 달라는 정도였습니다. 전쟁을 일으킨 ‘건국의 아버지'들도
“국왕 폐하의 눈을 가리는 본국 의회에 본때를 보여주자”는 정도였습니다.

독립을 반대한 사람들의 가장 큰 이유는 강자에 대한 두려움 이었습니다. 지금은 영국을 ‘신사의 나라’라고 하지만, 당시에는 식민지들을 무지막지하게 착취하는잔인한 나라였습니다. 강자인 ‘대영제국’, 그리고 ‘고도로 정예화 된 선진 군대에게 승리할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며 살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식민지군은 전쟁 준비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았고, 이미 전 세계 도처에서 전쟁을 치른 영국군과 식민지군의 전력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습니다.실제로 조지 워싱턴 사령관은 연전연패하다가 약 8개월만인 12월 말에야 겨우 첫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첫 승리 직후인 1776년 1월 10일, 토마스 페인이 ‘상식(Common sense)’이라는 책을 발간한 이후, 드디어 독립하자는 의견이 불붙기 시작합니다.

페인은 1774년에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는데, 다음해 전쟁이 발발하고 독립 찬반 문제로 시끄러워지자 그는 펜을 들어 독립의 당위성을 역설했습니다.

근대 정치사의 가장 유명한 저술중 하나인 ‘상식’이 세상에 나온 겁니다. 페인은 미국의 독립이야말로 지극한 ‘상식’이라고 주장했고, 책이 발간되자 식민지는 일파만파 술렁이게 됩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상식에 영국의 왕과 귀족은 어긋나므로 아메리카에는 공화제의 독립 정부가 들어서야 하며, 꿈과 자유로 가득 찬 거대한 신대륙이 폭군이 다스리는 작은 섬나라의 지배를 벗어나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페인의 주장은 대단히 혁명적이었지만 이것을 역설적으로 ‘상식’이라고 했고, 사상적 깊이나 이성보다는 논리적 감성으로 호소한 점 때문에 오히려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페인은 인세를 받지 않고 책값을 싸게 책정했고, 출판되자마자 50만 부 이상이 팔렸습니다. 당시 식민지 인구가 노예를 포함하여 3백만 명 정도였으니 성인 백인 남자들은 대부분 이 책을 읽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토머스 페인'이라는 글자를 구두 밑창에 새겨 넣고 그를 '밟아대는' 것이 런던에서 유행할 정도였습니다.

그로부터 약 1년 반이 지난 1776년 7월 4일, 식민지 대표들은 토머스 제퍼슨이 기초한 독립선언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해 독립을 선포했고, 1783년에 승리해 독립하게 됩니다. 독립선언문은 페인의 주장을 대부분 그대로 담고 있었습니다. 토마스 페인이 용기와 신념으로 ‘상식’이라는 책을 쓰지 않았다면, 대영제국이라는 강자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미국은 독립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페인의 ‘상식’으로 인해 지금 세계의 중심국가가 된미국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는 것 입니다.

페인은 1787년 영국으로 돌아가 ‘인권 1,2부’를 출간해 프랑스대혁명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했고, 반역죄로 체포되기 직전 프랑스로 탈출했습니다. 그는 구시대적 행태에 저항하는 현대의 가장 중요한 양대 혁명인 미국혁명과 프랑스대혁명에 절대적으로 기여하며 새로운 시대를 열었습니다.

상식에서 벗어난 폭력적 강자에게 굴복하지 않는 것이 사회발전과 역사발전의 시작입니다. 페인은 절대강자인 영국의 무지막지한 힘과 잘못된 현실에 용감하게 도전했고 그것이 오늘날의 미국을 낳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강자에 대한 두려움으로 그 앞에 줄을 서고, 기득권과 대세론에 편승해 침묵하는 것은 아닐까요?

상식에서 벗어난 폭력적 강자에게 용기 있게 문제를 제기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든 것 아닌가요?

다음에는 가톨릭의 절대 권력에 저항한 종교개혁을 살펴보겠습니다.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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